빛과 그림자
가을사랑
꿈과 희망!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꿈에 취해 있어야 한다. 꿈을 꾸면서 세상을 살아야 멋이 있다. 희망을 가져야 아름답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면 불쌍한 것이다.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복잡한 존재다. 생명이란 저절로 충전되는 영구수명의 받데리를 장착하고 있다. 저절로 자가발전되어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귀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사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삶의 목표를 상실해 버리면 비참한 상황에 빠져버리게 된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 시선이 비뚤어지면 영혼이 비뚤어지게 된다. 세상의 풍랑에 휩쓸려 가고 있어도 시선을 반드시 해놓아야 한다. 그래야 세파에 물들지 않고 고상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일본에 다녀온 다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서울의 빛과 그림자를 볼 기회를 가졌다. 반포고속버스터미널에서 구두를 닦았다. 평상시에는 구두를 닦지 않는다. 옛날에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매일 구두를 닦았다. 사무실까지 와서 구두를 걷어다가 반질반질하게 빛이 날 정도로 광택을 해서 도로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구두를 깨끗하게 닦아야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새는 구두 손질을 전혀 하지 않아도 그냥 깨끗하다.
내 구두는 대부분 한 곳에서 샀다. 명일동 주양쇼핑 1층에 있는 한 구두집이다. ITALY 라는 영문으로 표기된 상표가 붙어있다. 물론 국산인데, 한 켤레에 7만원 정도 한다. 그집 구두를 벌써 9년째 신고 있다. 같은 상표로 같은 사이즈로 된 구두가 몇 켤레 있다. 나는 그곳 단골이다. 그런데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별로 닳지 않아 문제다. 대부분 걷는 시간에는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다니고 사무실에서는 실내화를 신고 있기 때문이다.
구두를 맡겨놓고 앉아 있는데, 여자 손님이 두 사람이나 구두밑에 박혀있는 못을 고치는 것을 보았다. 여자 구두 뾰쪽한 곳 밑에는 작은 징이 박혀 있었다. 그것이 빠져나가면 새로 바꾸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아주 신속하게 여자 구두를 수선해 주었다. 그리고 3천원씩 받는다. 남자 구두를 닦는 것도 3천원이다.
영풍문고에 들렀다. 넒은 매장에 책이 많다. 그 많은 책을 다 누가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의 영성(실천편), 하용조 목사님의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그리고 외국 목사님이 쓴 신약개론을 샀다. 영풍문고 부근에 있는 Food Court 에 Burger King 가게가 있었다. 치즈버거와 콜라를 시켰다. 미국에서 먹던 햄버거 맛이 난다. 20여년 전에 미군 부대에 가면 그곳에 Burger King 가게가 있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맥도날드만 보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에도 웬만한 외국 프랜차이즈가 거의 다 들어와 있다.
평화의 전당 앞에서 저녁 시간에 바라보니 남산타워 불빛이 보였다. 남산까지는 꽤 먼 거리인 줄 알았는데 불빛으로 보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서울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불빛은 아름다움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불의 효용은 어두움을 밝혀주는 데 있는 것이었다. 다만, 내가 불빛을 보면서 서울을 아름답게 보았을 뿐이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 세 명이 내게 와서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기꺼이 응했다. 학생들의 낭만과 추억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순수에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 사람은 작은 행복을 쌓아나가야 삶 전체가 행복한 것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산행을 할 때 사람들은 끊임 없이 대화를 한다. 대화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준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대화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대화, 수다스러운 대화, 진정 사랑이 담겨 있는 대화, 업무로 인한 대화 등등이 있다. 불필요한 대화는 시간과 에너지 낭비이다. 특히 산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불필요한 대화를 할 바에는 차라리 침묵하라. 산과 머리 속으로 말을 나누어라. 단풍을 보고 가을색깔을 보는 것이 낫다.
동대문시장은 시간이 늦을수로 더 성황을 이룬다. 야시장이다. 밤늦은 시간에 사람들은 거리를 메우고 있다. 노점상들은 비록 자리는 불편하지만, 편안하고 안락한 실내점포보다 훨씬 활기에 차고 넘친다. 그곳은 장사를 하는 곳이지 독서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흘러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에 몇 사람이나 자신의 물건을 사가는 손님으로 잡을 수 있을까? 그들은 낚시를 하는 심정으로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낚시밥은 무엇일까? 아마 늘어놓은 물건들, 그리고 상인들의 눈빛이 아닐까? 나는 어느 낚시에 걸리게 될까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물건과 눈빛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물고 싶은 낚시밥은 있었지만, 나는 아무 것도 물지 않았다. 생각이 깊은 고기는 잘 물리지 않는 법이다.
동대문 평화시장 안을 가보면 3층으로 되어 있다. 무척 길게 되어 있다. 한번 쭉 걷는 것도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물건을 구경하면서 걷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좋은 물건들을 많이 진열해 놓고 있다. 내게 필요한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내게 필요치 않은 물건은 아무리 좋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길가에 핀 꽃들과 같이 보인다. 갈대숲도 있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 풀들을 보면서 걷는 것처럼 나는 그냥 지나치게 된다.
몇 가지 겨울 옷가지를 샀다. 물건값이 다른 곳에 비해 싸기 때문에 쉽게 살 수 있는지 모른다. 쇼핑을 편하게 해주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백화점처럼 비싼 곳에서는 쉽게 손이 가지 않고 물건을 사지 못하게 되는데, 동대문시장에 가면 때로는 불필요한 물건도 많이 사게 되는 이유다. 겨울옷은 여름옷보다 촉감이 좋다. 부드러운 털도 많고 따뜻해야 하기 때문에 옷감이 두껍기 때문이다.
동대문지하상가를 건너는데 각종 구호가 벽에 붙여져 있었다. 지하상가를 서울시에서 철거하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상인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구호를 써놓았다. 왜 갑자기 철거를 하려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인들은 어떻게 될지 답답해졌다.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전철을 탔다. 오던 중에 종로3가역에서 내렸다. 종로 3가에서 종로4가까지 걸었다. 시골에 장이 선 것처럼 노점상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은 천원 내지 만원 정도 하는 값싼 물건들이다. 돋보기, 라이타, 칼가는 돌, 지도, 넥타이, 가방 등등이다. 그렇게 많은 상인들이 하루 종일 그곳에 서서 물건을 팔고 있는데 얼마나 팔지 궁금했다. 물건을 파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시골에서 장이 서는 날 장보러 간다는 것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이겠지만, 그보다도 구경에 더 촛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던 사람이 50살이 넘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어느 회사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급으로 한 시간에 5천원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그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나도 가슴이 아팠다. 현실은 무척 어렵다.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먹고 살아가는 것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직장에서 평생 일을 하다가 정년으로 퇴직한 사람이 퇴직하고 나서 몇 달만에 췌장암이 발견되어 7개월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췌장암은 발견도 어렵고, 일단 암이 진행되면 고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했는데 나중에는 고통이 너무 심하고 음식을 먹지도 못할 정도라고 한다.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