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의 KTX


가을사랑



눈이 내리는 날에는 나를 찾게 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한 동안 찾아 본다. 눈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고, 나는 나는 눈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눈이 내리면 내 마음은 감동한다. 그 감동은 그 가냘픈 형체를 흩날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눈송이의 모습 때문이다. 때로는 좋아서 춤을 추는 것 같고, 때로는 슬퍼서 흐느끼며 몸을 비트는 것 같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면서 나는 깊은 상념에 젖는다. 


빗물과 달리 눈은 떨어지면서 묘한 촉감을 준다. 옷에 떨어져 잠시 하얀색으로 머물다가 이내 눈물로 변한다. 나의 옷은 눈을 눈물로 바꾸는 신통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 눈물을 내가 받아들이고, 내 눈물과 함께 사랑의 슬픔이 되어 내 마음을 누른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날에는 내 마음이 잿빛이 되는 때가 많다.  


눈이 내리는 거리를 지나 서울역으로 갔다. 서초동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는 잠수교를 지나 3호 터널을 지났다.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해서 서울역까지 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눈은 제멋대로 날리면서도 일정한 질서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가 크게 부딪히지 않고 땅에 내렸다. 땅에 내리면 한곳에 몰치지 않고 골고루 나누어 소복히 쌓여갔다.

 

사랑하는 두 눈송이는 함께 손을 붙잡은 채 누리고 있었다. 같이 붙은 두 눈송이는 더욱 진한 흰색으로 눈에 띄었다. 그들의 사랑은 순수한 순백의 색깔로 다가왔다. 곧 사라질 운명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힘껏 껴안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는 그들의 사랑은 천상에서 맺어진 운명이었다. 눈 같은 사랑을 배우고 싶었다.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그런 사랑이 눈속에서 아름답게 빛났다.  


서울역에는 표를 사려는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날씨 때문에 기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터넷으로 표를 구입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 편리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뽑은 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표검사도 일일이 하지 않았다. 그냥 지정된 좌석에 가서 앉으면 된다.


오후 4시 40분 KTX는 서울역을 출발하였다. 철로를 따라 눈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바깥에는 눈이 그런대로 쌓여 있었다. 하얀 세계를 달리는 기분은 묘했다. 내 마음도 그와 같이 하얗기를 소망했다. 눈처럼 하얗게 살아가고 싶었다. 눈 같은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그 사랑이 검게 때묻지 않고, 그냥 하얀 색깔로 생을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KTX는 아주 빠른 속력으로 나를 이끌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아주 천천히 바깥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어두워지는 풍경에 빠져 있었다. 세상의 색깔은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광명역에서 잠시 쉰 다음 5시 17분 천안아산역에 도착했다.


Y 사장님이 차를 가지고 나와 있었다. 천안에서는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함께 J 사장님 사무실에 들러 30분 가량 차를 마셨다. 아산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천안아산역으로 돌아와 던킨도너츠에서 커피를 마셨다. Y사장, C사장과 함께 커피를 마신 다음 나 혼자 KTX에 올랐다. 밤늦은 시간에 혼자 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택시를 잡기도 힘이 들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택시는 아주 드물게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렵게 택시를 탔다.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한강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강물은 겨울이 깊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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