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율법의 완성
가을사랑
[본문말씀]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롬 13: 8).
[QT]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선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셔야 하고, 그 분들의 노고로 열 달간 태안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탄생하게 되고, 또 자라는 동안 옆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
그 다음에도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녀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때그때 주변 사람들의 직접적, 간접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서로 돕고 사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일단 상대방으로부터 나에게로 도움이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고 그들에게 빚을 지면서 실상 그 빚을 제대로 갚는 경우란 많지 않다.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지 않으면 자신의 채무와 빚은 잊어버리거나 제대로 갚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불효자식은 그래서 생겨나게 되고, 경우 없는 사람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일, 은혜를 거꾸로 악으로 갚는 일 등은 역사상 많은 경우를 볼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빚을 진 사람을 채무자라고 한다. 채무자는 자신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 빚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제대로 갚지 못하면 채무자는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된다. 소송을 당하게 되고 강제집행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해도 변제할 채무가 남으면 파산선고를 받게 된다. 경제적으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채무불이행이나 파산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본인도 잘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빚, 정신적인 채무와 같은 영혼의 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가 영혼의 빚을 지고 있는지, 그 빚을 갚지 않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지고 있는 영혼의 빚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 빚을 갚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영혼의 빚을 모두 갚은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위선일 수도 있다. 영혼의 빚은 한이 없다. 부모님의 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기 때문에 끝이 없다. 그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 출세해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불효자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님들의 속을 썩이면서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있는 청소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는 부모님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학대하고 구박한다. 나이 들어 의지할 곳 없는 독거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남편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게 만들었더니 젊고 예쁜 여자들과 살림을 차리고 조강지처를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편은 병이 들면서까지 돈을 벌어다 주었더니 부인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경우도 많다.
사업자금을 대준 동업자를 배신하고 혼자 이익을 독차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을 믿은 순진한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은혜를 갚지 않고, 영혼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살면서 영혼의 빚을 져서는 안 된다. 물론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그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갚으려는 노력을 평생 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항상 가슴 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바위에 새겨야 한다.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생각과 행동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사랑이 있어야 이런 생각과 행동이 가능하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그는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