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의 위험성

 

가을사랑

 

 

[본문]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댜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 14:10~13).

 

[QT]

 

세상을 살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다. 짜증나는 일도 많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많고, 부족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경우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얌체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세상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약간 부족해서 단체생활에 잘 못따라가는 학생에 대해서는 다른 친구들이 비웃고 무시하게 된다. 머리가 나쁘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센스가 없다고 비웃는다. 그럴 때 그 아이는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그 반의 일정한 기준에 맞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아니면 경제적인 환경이 어려워서, 성격이 비뚤어져서, 나쁜 습관에 빠지는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보통사람들은 무시하고 경멸하고 비난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 잘 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을 무시한다.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무시한다. 얼굴이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만을 따라다니고, 권력에서 물러나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인기 있는 연예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는 비춰지는 법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는 아주 교만한 자존심이 있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경멸한다.

 

이런 세상 분위기 때문에 사실 없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아 기가 죽게 되는 세상이다. 너무 배우고 똑똑한 박사들, 해외유학파들이 많아 피곤한 세상이다. 정치, 경제, 교육, 스포츠, 연예분야이건 모두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제14장에서 이와 같은 세상 사람들의 부족한 태도를 경고하고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잇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같이 죄를 지어서 구치소에 구속된 상태에서 함께 재판을 받는 똑 같은 피고인이 다른 피고인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권한은 없다. 그들은 똑 같은 처지에 있고, 똑 같이 불쌍한 입장이다. 남을 판단할 권한도 없고 여유도 없는 것이다. 똑 같이 불쌍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인간은 모두 원죄를 타고 난 죄인이고 부족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보시에게는 모두 다 똑 같다. 아주 근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거의 비슷하다.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형제들이 서로 싸우면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잘못이고, 둘 다 똑 같은 것이다. 누가 특별히 잘 했고, 누가 특별히 못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다 비슷한 처지에 있고,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서로 똑 같이 잘못을 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의 잘못만 크게 확대경으로 보면서 비난하고 헐뜯는다. 자신의 주관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시원치 않고 잘못이라고 비난하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지적이다.

 

우리 모두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죄인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그 비판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은혜와 사랑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은 인간의 법과 정죄, 복수를 뛰어넘는 위대한 힘이다. 세상 살면서 인간 사이의 갈들은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법은 또 법으로 되갚음을 해오게 만든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이 적용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원망은 원망을 가져온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그 은혜의 법, 사랑의 법, 긍휼의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법이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피값으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으나 모두 주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8)'

 

우리는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예수님의 성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 속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바울은 말하고 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로마서 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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