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제1장 (3) - 법적 관점에서의 해석

 

가을사랑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이 사랑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5~7)’

 

로마서 1장 1절부터 7절까지의 인사말 부분은 ① 바울 자신에 대한 소개, ② 하나님의 복음의 정의, ③ 예수님의 성격, ④ 사도의 직분, ⑤ 수신자들의 신앙적 위치, ⑥ 로마성도들에 대한 축원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문의 편지이다. 편지에 사적인 내용이 거의 들어있지 않고 기독교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과 사상을 담아 적고 있다는 점에 로마서의 특징이 있다.

 

바울은 로마서를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썼던 것일까? 바울은 3차전도 여행을 하고 있던 서기 55년부터 58년 사이에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바울은 고린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교를 전도하고 있었다. 그는 더 나아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크다는 로마에 가서 전도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에 관하여 체계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자신이 로마에 가기를 바란다는 희망사항을 전달하려고 했고, 경제적인 협조를 구하고 있다. 로마서라는 제목은 바울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다.

 

로마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 않은 시대적 배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직접 보고 들은 상태에서 바울에 의해 씌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쓰는 글들과는 전혀 다르다. 아주 생생한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점에서 성경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울은 회심하여 목숨을 걸고 예수님에 대한 증인이 되려고 했다. 그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온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바울은 로마서뿐 아니라 많은 다른 서신들을 썼다. 바울이 쓴 14편이나 되는 서신들이 성경에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마서는 가장 체계적이고 탁월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혜라 함은 일반적인 도움이나 자선, 혜택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에 관한 은혜이며, 인간의 원죄에 관한 대속의 은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일방적인 관계에서 은혜를 주시고, 긍휼을 주시고, 속죄시켜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던 관계로 하나님께 직접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게 해주셨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예수님이 아니라면 사도라는 직분을 필요없는 것인지 모른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교를 전하기 위한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그 전제로 예수님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았다.

 

예수님이 근본적인 원인이고, 모든 문제해결의 근원이다. 인간이 받는 은혜와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전파하는 행동과 일, 그 사명을 실천하는 사도라는 직분 또한 예수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도라는 직분에 대해 인간이 만든 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법에서 유래된 권한이라는 것은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러한 존재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정치적 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며, 인간의 자의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의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나 사도의 직분을 맡을 수 없다. 설사 맡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도라는 직분으로 수행하는 일의 성과를 제물로 받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거부하시는 제물은 제물로서 가치가 없다.

 

진정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고, 예수님의 종이 되어서 자기의 목숨을 다 바쳐야 한다. 인간적인 생각은 배제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울은 모든 이방인 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주님께 순종하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방인은 항상 방황한다. 이방인은 정통의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배척당한다. 자신이 배척당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 대한 존재에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믿음을 가지고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별했다.

 

들은 완전한 선민의식에서 이방인을 멀리했고, 그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 선지자, 또는 선택받은 제사장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자신이나 가족, 민족공동체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아니 그러한 태도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그 이외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었다.

 

구약성경에서는 믿음의 백성들에 관한 문제만 나오고,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심판과 응징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식되지 못한 시기였다. 철저한 법의 시대였다. 인정 사정 없는 냉정한 법의 심판만이 유일한 정의의 실현수단이라고 잘못 믿었던 때였다. 죄를 지은 사람은 돌로 쳐 죽이고, 믿지 않는 백성들은 전쟁으로 정복해서 소멸시키는 것이 정의라고 믿었던 시기였다.

 

모세의 십계명은 사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엄격한 법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무섭고 잘못을 심판하시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애당초 하나님께서 선택하지도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지도 않는 이방인들은 구원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믿음의 백성들도 이방인들의 구원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그럴 여유도 없었으며, 그것을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커다란 계명을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그것은 충격적인 계명이었다. 인간이 그전까지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던 계명이었다. 생명의 말씀이었고 삶의 법칙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들의 문제를 모두에서 언급하고 있다. 로마에 있던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방인 중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로마에 가서 본격적인 전도를 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의 신앙문제는 바울에게 매우 중요한 당면과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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