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제1장 (4) - 법적 관점에서의 해석

 

가을사랑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8~10)’

 

바울이 쓴 로마서를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가 유의하여야 할 것은 이것이 하나의 서신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며, 서신을 보내는 대상이 로마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에는 상대방을 강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그들이 전제된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신문에 기사나 칼럼을 쓰는 것과도 다르다. 편지라 함은 반드시 발신인과 수신인이 있다.

 

그리고 그 수신인은 특정되어 있다. 물론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하는 서신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서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바울은 매우 명백하게 로마서라는 편지형식의 글을 쓰면서 수신인을 특정짓고 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롬 1:7)라고 쓰고 있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칠 무렵인 서기 57년 고린도에 머물면서 쓴 서신이다.

 

이 무렵 로마는 세계에서 제일의 강대국이었던 로마제국의 수도였다. 로마의 문화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사람들의 이성과 지성, 학문과 예술, 과학기술 등이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작은 나라였다. 그곳에서 출발한 예수 그리스도교를 바울은 절대적인 신앙으로 믿고 이를 세계 최대의 도시인 로마에 가서 전파하려고 마음먹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것이었다.

 

바울이 로마에 직접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로마서를 미리 써서 로마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안의 기본적인 교리를 설명하려고 그들에게 서신 형식의 글을 작성하여 보낸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아직까지는 직접 만나보지 않은 대다수의 로마교회 사람들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과연 바울이 무엇을 설명하고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일 바울이 편지를 쓰지 않고 직접 로마교회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였다면 보다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편지와 말은 전혀 다르다. 편지는 짧게 할 수 있지만, 말은 짧게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요점식으로 짧게 말을 하면 상대방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로마서는 비교적 짧게 바울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첫째,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있다. 감사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러한 선행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이다.

 

로마교인들이 바울에게 무엇을 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교인들로 인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로마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인들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복음은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영토를 벗어나서 넓은 세상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도들의 사명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전도를 실천하는 교인들의 노고는 감사의 대상이었다. 바울은 로마교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의 하나님이라고 특정하고 있다.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롬 1:8)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어떤 감사한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감사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울과 같이 내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어야 한다. 이런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감사한 일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이 나와야 하고,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일신인 하나님을 의미한다. 전지전능하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야훼 하나님을 뜻한다. 바울은 이를 ‘내 하나님’이라는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바울 개인의 소유라고 할 수 있을까? 바울만의 하나님이고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닌 것인가?

 

어떤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하면 그것은 그 아버지의 아들임을 뜻한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이 세 사람 있으면 그 아버지는 오직 세 아들에 대해서만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있고, 법적 지위를 가진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는 될 수 없다. 설사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자관계가 아니라, 그냥 아버지와 같은 정도의 친밀관계가 있다는 뜻에 불과하다.

 

의붓아버지, 양아버지, 작은 아버지, 대부(godfather) 등의 다양한 용어가 혼재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권위, 친밀감, 부양 및 보호책임 들을 통틀어 좋은 의미에서 사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로마서에서 바울이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강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보여진다.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느끼고 하나님을 절대자로 믿고, 하나님을 위해 종노릇을 자청하며 그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서약한 바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매우 담대하게 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죽은 지 1,95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바울이 살던 시점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는 불경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엄격한 율법의 집행자이며 징계자이었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부를 수 없었으며 오직 경배의 대상이었다. 하나님을 개인이 내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바울이 이와 같이 내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무척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편지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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