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과 교사의 직무유기죄
가을사랑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고도 적극 대응하지 않은 교사가 적발된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최근 학교폭력이 만연되고 고질화되면서 그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경찰청에서는 이러한 경우 직무유기죄로 형사입건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의 태도는 법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범죄와 형벌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
경찰에서는 교사가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라도 직무유기로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이와 관련, 일선 경찰서에 학교폭력 발생 시 교사의 직무유기가 있었는지 여부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고 하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행위가 특정한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한 후 처벌대상이 된다고 공표를 해야 마땅하고, 만일 애당초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직무유기 여부를 조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직무유기죄는 형법 제122조에 규정되어 있는 공무원에 관한 범죄이다.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추상적인 충실의무를 태만히 하는 모든 경우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며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대법원 1983. 3. 22. 82도3065 판결). 이와 같이 직무유기죄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구체적 위험범에 해당한다(대법원 1997. 4. 22. 95도748 판결).
직무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 직무수행을 거부한다는 인식이라는 주관적 요건과 ②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라는 객관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태만하거나 바쁘거나 착오를 일으켜서 부당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직무유기죄라는 범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1994. 2. 8. 93도3568 판결).
학교폭력을 방치한 교사의 경우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교사가 유기하거나 방치한 직무의 범위가 먼저 문제된다. 직무유기죄에서 말하는 직무라 함은 공무원법상의 본래의 직무 또는 고유한 직무를 의미한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공무원이라는 신분관계로 인해 부수적 파생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직무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직무유기죄에서의 직무는 공무원이 맡은 바 직무를 그때에 수행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구체적인 직무이어야 하는 것이다.또한 직무를 유기한다는 것은 직무에 관한 의식적인 방임 내지 포기 등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교사가 학교폭력을 예방할 책무가 있고, 학교폭력이 발생한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책임을 제대로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징역을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불성실하거나 무책임하다고 비난을 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계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형법에서 말하는 직무유기죄는 이런 경우까지 처벌하려는 취지가 아님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무죄를 인정했다. ① 부대물품출납관이 물품불출청구 후 즉시 불출되지 않은 이유를 확인하지 않은 경우, ② 약사감시원이 무허가약국개설절차를 조사하여 상사에게 보고하고 수사관에 고발하지 않은 경우, ③ 교도소 보안과 출정계장과 감독교사가 호송중에 호송교도관의 감독을 소홀히 하여 재소자들이 집단으로 탈주한 경우 등에는 공무원의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결론적으로 학교폭력문제와 관련하여 해결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요청된다. 그렇지 않고 이번에 경찰에서 발표한 것처럼 학교폭력을 인지하고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는 교사를 직무유기죄라는 범죄로 인정해서 처벌하겠다는 태도는 불법이며 부당한 것이다. 실무상으로도 직무유기죄는 그야말로 고의적인 직무유기가 아니면 처벌하지 않고 있다. 경찰관이 범죄를 인지하고 입건하지 않고 묵살하거나, 세무공무원이 양도소득세과세자료가 은닉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방치한 경우 등 특별한 경우에 인정되는 것이 직무유기죄다. 따라서 경찰의 성급한 판단은 잘못된 것이므로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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