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의 책임 한계

 

가을사랑

 

<사실관계>

피해자는 57세의 남자로서 간경화, 식도정맥류 출혈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피해자에게 신선 냉동혈장 3봉지(320㎖) 및 농축적혈구 1봉지(200㎖)를 수혈하면서, 간호사로 하여금 단독으로 수혈을 하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간호사가 혈액봉지의 라벨을 확인하지 아니하여 간호처치대 위에 놓여있던 다른 환자에게 수혈할 혈액봉지를 피해자에 대한 혈액봉지로 오인하고서, 혈액형이 B형인 피해자에 대하여 A형 농축적혈구 약 60㎖를 수혈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급성 용혈성 수혈부작용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말 깜짝 놀랄 일이다. 생명과 신체를 직접 다루는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환자는 간경화, 식도정맥류 출혈로 인해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가 수혈을 잘못해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말 불행한 일이다. 이와 같은 어이 없는 죽음에 대해 가족들은 처음에는 왜 죽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정확한 사망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주장해서 경찰에 의해 수사가 시작되고, 결국 나중에 수사해 보니 수혈을 할 때 혈액형이 다른 피를 수혈해서 급성 용혈성 수혈부작용을 일으켜 사망했음이 드러났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실수에 대해 누가 형사책임을 져야 할까? 물론 민사책임은 병원에서 지게 될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고용했기 때문에 사용인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형사책임은 병원이 질 수 없다. 병원은 어디까지나 자연인이 아니고 법인이기 때문에 병원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교도소에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인 자연인, 즉 의사나 간호사에게 개별적으로 그들이 어떤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잘못을 저질렀고, 그러한 잘못 때문에 피해자가 사망했는지를 증거에 의해 확인한 다음 따로따로 형사책임을 묻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의료행위는 의사와 이를 보조하는 간호사가 공동으로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의사와 여러 간호사가 동시에 수술 및 진료에 관여하기도 한다. 만일 수술이 잘못되어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게 된 경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간호사가 다른 환자에게 수혈할 혈액을 당해 환자에게 잘못 수혈하여 환자가 사망한 경우, 간호사에게 환자에 대한 수혈을 맡긴 의사에게 과실을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된다. 그리고 이때 두 번째 혈액봉지로부터는 의사 대신 간호사가 교체해 주기로 하는 병원의 관행이 있었다는 이유로 간호사에게 수혈을 맡긴 의사가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살펴보기로 한다.

 

수혈은 종종 그 과정에서 부작용을 수반하는 의료행위이다. 그러므로 수혈을 담당하는 의사는 혈액형의 일치 여부는 물론 수혈의 완성 여부를 확인하고, 수혈 도중에도 세심하게 환자의 반응을 주시하여 부작용이 있을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를 갖추는 등의 주의의무가 있다.

 

의사는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가지고 환자의 전적인 신뢰 하에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이다.

 

의사는 의료행위를 시술하는 기회에 환자에게 위해가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의사가 간호사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관여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의사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간호사는 그 보조자에 불과하다.

 

의사는 당해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위해가 미칠 위험이 있는 이상 간호사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충분히 지도·감독을 하여 사고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만일 의사가 이를 소홀히 한 채 만연히 간호사를 신뢰하여 간호사에게 당해 의료행위를 일임함으로써 간호사의 과오로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였다면 의사는 그에 대한 과실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 내용이다.

 

피고인이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인턴의 수가 부족하여 수혈의 경우 두 번째 이후의 혈액봉지는 인턴 대신 간호사가 교체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이 혈액봉지가 바뀔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그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함이 없이 간호사에게 혈액봉지의 교체를 일임한 것이 관행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 사건에서 주치의인 의사와 주치의를 보조하는 내과 인턴, 그리고 간호사 모두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대법원 1998. 2. 27. 선고 97도2812 판결).

 

인턴의 경우 주치의를 보좌하여 피해자의 치료를 맡았으면, 수혈을 할 때에는 직접 혈액봉지를 확인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수혈 도중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야 하고, 간호사에 대하여는 의사의 참여 없이는 수혈을 하지 아니하도록 지도·교육하여야 하며, 자신의 참여하에 간호사로 하여금 수혈을 하게 하더라도 그 환자에게 수혈할 혈액봉지가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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