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보수를 확실하게 받는 방법

 

가을사랑

 

1. 건축사는 법을 싫어하는가?

 

최근에 건축사 한 분을 만났다. 설계감리를 해주었는데, 설계비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송을 하자니 법은 잘 모르겠고, 소송비용은 들어갈 것 같아서 보통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설계감리를 마치고 건물은 완성되었는데, 건축업자와 분쟁이 생긴 것을 핑계로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설계감리비를 건축업자에게 일괄해서 주었다는 취지였다. 건축사는 애써 설계도서를 완성해서 건물을 다 짓도록 해서 상당한 이익을 보았는데, 설계감리비를 떼어먹으려고 하니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2003년부터 대한건축사협회 자문변호사로 활동해왔다. 세월이 빨라 벌써 12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많은 건축사를 만나보았다. 건축사는 이과 계통에서 건축공학을 연구한 분이라 변호사와는 다르다. 법 이야기만 나오면 골치부터 아파한다. 그건 이해가 간다. 변호사인 나도 수학이나 과학 이야기만 나오면 아예 깊이 생각할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건축사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맡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보수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설계감리를 맡을 때 의뢰인과 철저하게 따지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표준계약서를 사용해서 도장을 받아 놓고 만다. 계약을 체결할 때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나중에 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으면, 별도로 특약사항을 확실하게 기재해 놓아야 하는데, 그러한 것을 소홀히 한다. 나중에 설계감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도록 한다.

 

그러나 법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려는 사람만을 보호한다. 자신의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건축사는 의뢰인과 정당한 게약을 체결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설계감리업무를 수행한 다음, 정당한 보수를 받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2. 계약서를 명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많은 건축사 분들이 의뢰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단순한 요식행위로 이해한다. 하지만 계약은 매우 중요한 법률행위이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계약서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계약체결은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재벌 회장이 현금 10억원을 아무런 조건 없이 증여하겠다고 자필로 써주면, 그 종이를 가지고 즉시 10억원을 받아올 수 있다. 만일 그 회장이 증여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회장 재산을 가압류하고 이행판결을 법원에서 받은 다음, 강제집행해서 현금을 받아올 수 있다.

 

참고로 말하면, 증여(贈與)는 당사자 일방(증여자)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수증자)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계약이다(민법 제554조). 최근에 재벌들이 자녀들에게 생전에 편법으로 증여를 하여 상속세를 적게 내려는 경향이 있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증여제도이다.

 

계약은 당사자 사이에서는 헌법 보다 더 중요한 구속력을 가진다. 헌법이나 법률은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규범이지만, 계약은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곧 바로 효력을 가진다. 계약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계약서의 문안을 잘 살펴보고, 자신이 부담하게 될 계약상의 의무조항을 잘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면 건축사는 건축주와 어떠한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가? 이른바 설계감리계약서를 작성한다. 그 주된 내용은 건축사는 특정 건축물을 설계하고 감리해준다. 또는 건축허가를 받는 업무를 대행해준다. 건축 공사가 끝나면 준공검사를 받고 사용승인까지 받아준다는 의무를 부담한다는 의사표시를 한다. 상대방인 건축주는 건축사가 제공하는 설계감리 등의 용역(service)에 대한 대가로 금전을 지급한다는 의사표시를 한다. 이와 같은 당사자의 각 의사표시를 서면에 기재해 놓는 것이 바로 설계감리계약서이다.

 

계약(契約)이란 사법상의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당사자의 합의를 의미한다. 계약은 당사자의 청약에 대한 상대방의 승낙으로 성립한다. 청약은 일방이 타방에게 일정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것을 제의하는 상대방 있는 의사표이다. 승낙은 청약에 대응해서 계약을 성립시킬 목적으로 청약자에 대해 하는 청약수령자의 의사표시를 말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계약은 워낙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장황하게 풀어보았다. 사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어렵게 되어 있다. 지나치게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 특히 오늘날과 같은 한글세대에게는 마치 무슨 암호 같다. 쉽게 해독할 수 없는 퍼즐과 같이 골치 아프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가급적 일반인이 알기 쉽게 법적 문제를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설계감리계약은 위임계약에 해당한다. 때로는 그 내용에 따라 도급계약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임계약은 위임인과 수임인 사이에 사무의 처리를 목적으로 체결되는 계약이다. 위임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게 된다(민법 제680조). 이에 대하여 도급계약은 당사자 일방(수급인)이 어느 일을 완성하고 상대방(도급인)은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말한다.

 

설계감리계약은 건축사가 설계용역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기로 하는 유상계약이며, 쌍무계약에 해당한다. 건축사는 설계감리계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계약 체결을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아무리 구두로 합의를 했다고 해도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으면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 일단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으면 법에서는 당연히 그 효력을 인정하게 된다. 계약서와 같은 처분문서는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경우 그 문서에 표시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내용되는 법률행위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마땅하다(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다38602 판결)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태도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다음, 나중에 딴 소리를 해보았자 법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언제 설계감리비를 청구해야 할까?

 

건축사는 의뢰인과 사이에 설계감리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고, 계약서에 기해 자신에게 주어진 설계감리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설계도서를 완성하고 감리를 마치면 계약서에 따라 설계감리비 청구를 하여야 한다. 설계감리비를 계약금, 중도금, 잔금의 형태로 구분하여 나누어 받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명목의 대금을 받게 될 조건이나 기한이 설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경우에는 조건을 성취하거나, 기한이 도래하면 즉시 설계감리비지급청구권이 발생하게 된다.

 

자신은 계약대로 이행을 하였는데, 상대방이 설계감리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단호하게 자신의 권리주장을 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알기 쉽다. 설계를 맡겼는데, 제대로 설계도서가 나오지 않는다든가, 설계가 잘못되어 공사가 지연된다든가 하면 상대방인 건축주는 당장 난리를 치게 된다. 끝내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면 설계감리상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절대로 건축주는 건축자사 계약상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게 되면, 그것을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일단 계약이 체결되면, 각자 자신의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하고 챙기려고 한다. 그런데 건축사만 자신의 용역은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하면,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4. 설계감리비가 아예 소멸하는 수도 있다

 

건축사가 계약대로 다 설계감리를 마쳤는데도 용역비를 주지 않고 있을 때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가면, 설계감리비지급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그러면 아무리 큰 금액이라고 해도 법으로는 돈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소멸시효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시효(時效)라 함은, 일정한 사실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된 경우에 그 사실상태가 진실한 권리관계에 합치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서 법률상 일정한 효과를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 효과로 권리의 소멸을 가져오는 소멸시효와 권리의 취득효과를 가져오는 취득시효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법에 있어서 시효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권리 자체가 소멸하거나 취득되는 무서운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최근에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다른 범죄는 모두 공소시효가 있다. 그래서 어떠한 범죄이든지 공소시효가 지나면 더 이상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논이나 밭을 타인이 소유의 의사로 20년간 경작하고 있었다면, 취득시효가 완성되어 법률상 그 소유권이 점유자에게 이전된다.

 

소멸시효는 더 큰 문제이다. 아무리 많은 금액을 받을 권리가 있어도 이를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채권의 소멸시효는 일반적으로 10년이다. 그런데, 건축사의 설계감리비는 예외적으로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 걸린다. 법에서 그렇게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민법 제163조에 의하면, ‘공사의 설계 또는 감독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규정하고 았다. 따라서 설계비를 청구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아무리 많은 금액의 설계비도 받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설계감리비는 3년 이내에 받아야 한다. 만일 그 기간내에 주지 않으면, 건축사로서는 법원에 지급명령을 청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민법은 또한 소멸시효는 청구, 압류 또는 가압류, 승인 등의 사유로 중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68조). 이때 청구는, 재판상 청구, 파산절차참가, 지급명령, 화해신청과 임의출석, 최고등을 의미한다. 단순히 내용증명방식으로 지급청구를 하는 통지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5. 설계감리비 청구는 어떻게 하는가?

 

건축사가 보수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설계도서를 완성해서 건축주에게 교부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건축주가 설계도서가 완성된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수령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설계비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건축주가 당초 계획했던 건축공사를 하지 않기로 하든가, 설계사무실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건축사에게 맡겼던 설계를 중간에 그만 두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설계도서를 납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정확한 방법은 설계도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하는 것이다.

 

설계계약은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건축주가 계약을 도중에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건축사는 계약서의 내용을 잘 살펴보고, 그때까지 자신이 작업한 부분에 대해서 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만일 의뢰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건축사는 설계도서를 납품하였는데, 의뢰인이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면, 한 두 차례 전화로 지급을 요구하고, 안 되면 서면으로 지급청구를 하여야 한다. 이때에는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방식으로 통지서를 발송하여야 한다.

 

통지서에는 구체적인 청구금액과 지급요청기한을 기재하여야 한다. 만일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기죄로 형사고소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의뢰인이 설계용역비를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설계를 시켰다면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설계용역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대체로 민사사건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용증명을 보낼 때, 변호사 명의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변호사가 설계비청구사건에서 위임을 받았다는 사실과, 임의로 지급을 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취지를 기재해서 통지서를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통지를 받은 건축주는 “아! 건축사가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정식으로 청구를 하고 있구나. 빨리 변제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변호사비용까지 물어주고, 소송에 따른 지연손해금까지 청구해 올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은 그냥 건축사가 전화로만 독촉을 하니까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가 변호사 명의로 작성된 통지서를 받으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면 약간의 보수만 지급하면 된다. 정식으로 소송까지 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 빨리 법적인 조치를 시작하자민사소송을 시작하기

 

통지서를 보냈는데도, 예정된 지급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더 이상 독촉장을 보낼 필요는 없다. 공연히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재산을 빼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소장이나 지급명령을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

 

소장이나 지급명령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양식을 찾아 건축사가 직접 작성하면 된다. 현재는 전자소송시스템을 통하여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전자소송은 인테넷 검색 창에서 “대법원 전자소송”을 입력하거나 주소창에 http;//ecfs.scourt.go.kr을 입력하여 진행하면 된다. 전자소송에서는 전자문서의 제출, 송달, 비용납부, 사건기록열람 등을 인터넷을 통하여 편리하게 할 수 있다. 다만, 전자소송에서도 변론기일이나 조정기일 등 지정된 기일에는 당사자가 법원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건축사가 보수를 제대로 받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재판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인 건축주의 재산에 가압류를 신청하는 것이다. 건축주에게는 대체로 토지와 같은 부동산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동산에 가압류를 걸어놓으면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설계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건축주가 거액의 설계감리비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서 재산을 처분해 버리고 무자력자가 되기도 한다. 아니면 건축물의 소유권자가 바뀌거나, 건축주가 부도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는 판결이 나기 전에 부동산등을 가압류해놓지 않으면 판결을 받아봤자 집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7. 맺는 말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서민경제는 매우 심각한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설계감리비를 못받게 되면, 사전에 지출하는 인건비나 외부용역비 등을 손해보게 된다. 따라서 사전에 계약체결을 제대로 하고, 계약이행상황에 따라 설계감리비를 확실하게 받도록 하여야 한다. 만일 제대로 주지 않으면, 재산가압류, 지급명령이나 소송의 제기 등을 신속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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