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5-13

명훈은 마침내 경찰서로 갔다. 여자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다. 말하자면 강제소환이 아닌 임의출석을 한 것이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피의자로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가 참여하여 조사를 받을 때 도움을 준다.

수사관 앞에 피의자가 앉고, 그 옆에 변호사가 앉는다. 수사관은 피의자를 상대로 조사를 할 때, 먼저 피의자에게 형사소송법상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고지한다.

‘피의자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권리를 알려주고, 피의자신문조서에 그와 같은 권리를 고지해준 사실과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진술을 하겠다는 취지의 동의 의사표시를 기재하도록 한다.

또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받았다는 표시도 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사받으면서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일 진술을 거부하면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의심을 받고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범죄사실을 부인하거나 다툰다. 소극적으로 진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피의자에게는 이와 같이, ①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② 묵비권, ③ 부인할 수 있는 권리, ④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 ④ 변호인의 참여를 받을 권리 등이 부여되어 있다.

사랑의 모진 운명 5-14

“피의자 박명훈은 피해자 이옥임(여, 가명, 39세)을 강간한 사실이 있지요?”

“아닙니다. 저는 피해자를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모텔에 같이 갔는데, 저는 침대에 누워있고, 피해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같이 나가자고 팔을 잡았더니 갑자기 저를 때리고 난리를 쳤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피해자 주장에 의하면, 모텔방에서 피의자가 갑자기 피해자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린 다음 성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거짓말로 나를 강간범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침대에 눕힌 사실도 없고, 치마를 올리거나 내린 사실도 없고, 성교를 한 사실도 없습니다. 증거를 대라고 해주십시오. 증거를!”

“피의자는 강간을 한 다음, 피해자가 친구를 불러 함께 맥주집으로 가서 이와 같은 각서를 써준 사실이 있지요?”

수사관은 명훈에게 ‘각서’ 사본을 보여주었다. 명훈은 자세히 각서를 들여다 보았다. 분명 그때 자신이 쓴 각서가 틀림없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정말 너무 자세하게 노골적으로 강간죄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쓰여있었다.

“이 각서는 그 여자들이 나를 붙잡아놓고 때리고 겁을 주어서 본의 아니게 허위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쓴 것입니다. 절대로 사실이 아닙니다.”

사랑의 모진 운명 5-15

“아니 그렇다면 강간도 하지 않았는데, 여자들이 조금 때린다고 이처럼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각서를 써주었다는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그 여자들을 불러서 대질조사를 해주세요.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수사관은 어디로 연락하더니 곧 얼마 있지 않아서 피해자 이옥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여자 변호사 옆에 앉으라고 했다. 대질조사가 시작되었다.

피해자는 당시 있었던 상황을 아주 영화보듯이 생생하게 설명했다. 너무 리얼해서 명훈은 그 여자가 IQ가 아인슈타인보다 더 좋은 것으로 보였다.

바로 한 시간 전에 있었던 일처럼 아주 또렷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치마가 어떻게 걷어올려졌는지, 팬티는 어떤 색깔인데 어느 정도 내려졌는지, 그리고 성기는 어떻게 삽입이 되었는지, 몇분간이나 성교를 하고, 사정은 어떻게 했는지, 일이 끝난 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맥주집으로 가서 범행을 시인받았는지, 각서는 어떻게 작성하게 되었는지 등등을 설명하는데 마치 법과대학 교수처럼 보였다. 아주 논리적인 여자였다.

사랑의 모진 운명 5-16

수사관은 명훈과 옥임이 각자 자신의 주장을 하고 진술을 하는 것을 별로 따지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조서에 타이핑하고 있었다.

수사관은 옥임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데, 명훈은 강간범이 처벌이 무서워서 거짓말로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물론 자신이 상당 부분을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여자의 말도 엄청난 거짓말이었다.

‘나이가 40살이고, 애도 낳았다는 여자가 술이나 마시고 다니면서 무슨 강간을 당했다고 그러냐? 그리고 내가 분명히 삽입도 안 하고, 사정은 더욱이 안했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냐? 돈을 뜯어먹으려고 하는 짓이다.’

끝으로 수사관이 여자에게 물었다.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원합니까?”

“예. 저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분명히 저를 강간해놓고, 거짓말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합의를 절대로 보지 않겠습니다. 징역을 많이 살게 해주세요. 처벌을 원합니다.”

고소를 했고, 여기에서도 형사처벌의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한 것이다. 예전에는 강간죄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친고죄(親告罪(친고죄)였다.

사랑의 모진 운명 5-17

그러나 지금은 강간죄는 친고죄가 아니다. 피해자로부터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은 인지(認知)해서 수사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고소가 취소되어도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는 명훈에 대해 처벌해 달라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수사관은 명훈에게 물었다. “피해자와 합의할 의사는 없는가요?”

“합의하려고 했는데, 3천만 원이나 달라고 해서 합의를 못했습니다. 저 여자는 공갈범입니다.”

피의자신문이 끝났다. 수사관은 명훈과 옥임에게 피의자신문조서 중 자신의 진술 부분에 대해 잘 읽어보고 서명날인을 하라고 했다. 명훈이 읽어보니 특별히 진술과 다르게 조서가 작성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이어서 명훈의 변호사도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서명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명훈은 피해자를 복도에서 만났다. 화가 치밀었다.

“아니 왜 새빨간 거짓말을 해요. 내가 언제 강간했어요?”

옆에서 여자 변호사가 말렸다. 피해자는 명훈을 째려보고 그냥 재빠른 걸음으로 앞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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