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전중학교에 입학하다
아침부터 굶고 점심을 못 먹고 저녁 늦게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니 눈이 나빠졌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특히 어렸을 때 어두운 다락방에서 책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근시가 되었다.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때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시켰다.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에서 불을 켜놓고 늦게까지 공부했다.
1965년 2월 대전문창초등학교를 9회로 졸업했다. 문창초등학교 교훈은 ‘바르고 굳세며 슬기롭게’다. 1955년 4월 6일 개교한 공립학교다. 대전광역시 중구 문창로 55(부사동)에 위치한다.
대전중학교는 대전시와 충청남도에서는 들어가기가 제일 어려웠다. 대전중학교에 합격하게 된 영광을 안았다. 괜찮게 사는 친구들은 과외를 했지만, 나는 형편이 안 되었다. 과외를 하지 않고 대전중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1917년 4월 1일 관립 경성중학교 대전분교가 설치되었고, 1918년 4월 1일 관립 대전중학교가 설립 인가되어 개교하였다. 그후 1951년 학제개편으로 대전고등학교와 분리되었다. 대전중학교는 2015년 2월 6일 제65회 졸업식에서 졸업생 145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기준 졸업생 연인원은 총 33,341명이다.
1965년 3월 검정색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쓰게 되었다. 눈이 초롱초롱했던 당시 사진을 보면 착한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집에서도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매우 순종적이었다. 형제간에도 별로 싸우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때 일이다. 하루는 부모님과 한 방에서 잠을 자다가 도중에 잠이 깨었다. 부모님께서 조용히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나는 자는 척하면서 말씀을 들었다.
부모님께서는 형과 나를 학교에 더 이상 보내지 않고 공장에 보내는 문제를 상의하고 계셨다. 아버님은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에 보내자는 말씀이었고, 어머님은 반대하셨다. 당시 대사동에서 신덕순 아저씨가 양은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아들 두명을 학교에 보내면 돈이 많이 드니까, 공장에 보내 기술을 배우게 하고 적은 월급이라도 받아오면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들들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 자리에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런 대화를 들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너무 슬펐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데 나는 작업복을 입고 양은솥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견할 수도 없었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였다.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면서도 발걸음이 무거웠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선생님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다. 온통 생각은 양은공장에 가 있었다. 그전에 아버님을 따라 몇 번 가본 양은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를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곧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친구들조차 싫어졌다.
나와는 신분이 다른 세계의 아이들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중에 커서도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여쭤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하숙일도 안 되고 아이들은 많고 학교에 보내자니 돈은 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다행이 그 문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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