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전고등학교를 다니다

 

 

 

1학년때만 해도 나는 성적이 중간밖에 안 되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2학년이 되면서 제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면 마당에 밥상 하나 갖다 놓고 앉아서 수학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방에서는 더워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마당에 앉아 공부를 하면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2학년 중반부터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올라갔다. 영어와 수학은 아주 Top이었다. 수학에 가장 자신 있었다. 그래도 이과에 가지 않고 문과를 지망했던 것은 처음부터 이과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학년이 되자 대학시험 때문에 모두 공부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교 1등을 여러 번 차지했다. 당시에는 매달 시험을 봐서 성적을 1등부터 100등까지는 방에 써서 붙여놓았다. 1등을 하면 기분이 매우 좋았다. 친구들도 부러워하면서 알아주었다.

 

당시 학교 수업시간에도 수업을 제대로 듣는 것이 아니고 혼자 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대부분 아는 것이어서 다른 책을 보거나 문제를 풀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 척 해야 했기 때문에 반은 그쪽에 신경이 갔고, 나머지 반은 혼자 공부하는 책에 신경이 갔다. 그래도 전교에서 1등을 몇 번 하니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인정해 주셨다.

 

문창동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몇 달 있었다. 문희 부모님께서는 비교적 잘 사는 형편이었고, 내가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지내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문희 집에 가서 함께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문희는 매우 의젓하고 속이 깊었다. 그 집 마당은 시원하고 넓었다. 문희 누나는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집 앞에는 대전천이 있었고 그 건너에는 극장이 있었다. 밤이면 그 극장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사랑은 계절따라’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몇 달 후 다시 대사동 집으로 돌아와 대학입시 공부를 했다.

 

한동안 선화동에 있는 독서실까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한 시간 정도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집에서 공부하면 될 것을 새벽에 캄캄한 길을 위험하게 자건거를 타고 독서실을 왜 다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교 성적이 좋았으므로 서울 법대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런데 시험 보름 전 겨울 날씨에 공부하다 창문을 열어놓고 낮잠을 잔 것이 잘못되어 감기에 걸렸다. 무서운 독감이었다. 병원에 못가고 집에서 약이나 먹고 있었다.

 

시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감기가 악화되어 시험 당일에는 아주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머리는 아프고 콧물은 나고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그렇게 치룬 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1971년 1월 대전고등학교를 제50회로 졸업하였다. 이종호 교장선생님이었고, 김영덕 교감선생님이었다. 3학년 7반에서 졸업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유진형 선생님이었다. 지금 이 시간 고등학교 앨범을 다시 꺼내보니 새까만 안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약해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3년을 회상해 보면, 그냥 공부하고 학교에 다니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집에 돈이 없어 수학여행에 몇 번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 못 가는 입장에서 느끼는 콤플렉스를 느꼈을 텐데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현실에 무척 잘 순응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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