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졸업 후 방황하던 시절
각자 따로 대전으로 갔기 때문에 일단 검찰청 앞에 있는 스타박스 커피숍에서 만났다. 늘 서울에서만 보다가 대전에서 만나니 약간 이상했다. 1시간 동안 서로 전략을 짜고 상의를 했다.
재판에는 언제나 긴장이 흐른다. 커다란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가 적대적이다. 변호사도 상대와 싸워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의뢰인과 한마음, 한편이 된다. 그래서 상대 변호사가 말을 하면 우선 거부반응부터 보이게 된다.
이쪽에서 보면 상대방의 주장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정 자체가 굳어진다. 음성이 커지기도 하고, 거칠어지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재판이 끝난 다음 나 혼자 차를 운전하고 대전문창초등학교, 대신초등학교, 대전고등학교 등을 순차로 돌아보았다. 옛날 내가 살던 곳, 다니던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까마득하게 오래 된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어려서 고생했던 시절이었다. 부모님과 형제들, 함께 고생하고, 세상 모르고, 힘이 없는 상태에서 눌려 지냈던 시간들이 씁쓸하게 떠올랐다.
대신초등학교에 올라가 보니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 짓고 있었다. 내가 살던 3층집도 헐고 새로 지었다. 바로 옆에 있는 집들은 몇십년 전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방황이란 아무런 목표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인생에는 때로 방황의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약 7개월이 그랬다. 대신초등학교는 산 중턱에 있다. 학교까지 올라가려면 가파른 경사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한다. 우리 집은 급경사가 시작되는 바로 입구에 있었다. 집 앞으로 큰 도로가 개설되었다. 그 전에는 사람만 다니는 길이었는데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게 넓혀졌다.
나는 학교에 자주 올라가 바람을 쐬었다. 거의 매일 올라 다녔다. 학교 뒷산에도 많이 올라갔다.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산에 올라가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목청을 돋우기 위해 소리도 질렀다. 겨울에는 눈이 쌓인 뒷산을 운동화를 신고 혼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미끄러져 나무에 무릎을 다친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때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미끄러워서 내려올 수 없어 쩔쩔매던 생각이 난다.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작은 돛단배처럼, 파도에 흔들거리며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말 비참한 시절이었다.
나름대로 혼자 개똥철학 비슷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도 하였지만, 아무런 체계도 없었다. 누군가 인생의 스승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스승이 없었다.
학교에서 수학이나 영어문제나 풀고 있었던 나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집에서 몇 달을 놀고 있다 보니 무기력해졌다. 나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지, 대학을 갈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아무런 자신도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답답하게 시간만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대학교에 친구 몇 명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빛나는 대학교 뱃지를 달고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우쭐대는 친구들을 만나니 위축되었고 비참한 심정을 느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그 친구들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시험이란 냉정한 것이었다.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운이 있어 그랬든, 재수가 좋아 그랬든 붙으면 영웅이 된다. 떨어지면 아무 할 말도 없다. 뭐라고 변명해도 의미가 없다. 왜 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떨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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