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울에서 정일학원을 다니다
재수를 하고 있을 때 형과 함께 보문산으로 놀러 가는데 도중에 두 명의 청년들과 시비가 생겼다. 길을 가는데 그 사람들이 왜 째려보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싸움은 끝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입고 있던 잠바와 내복을 뚫고 사무용 칼 같은 것으로 내 오른쪽 손목 위를 3Cm 그어놓은 것이었다. 너무 흥분해서 피가 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병원도 가지 않고 그냥 약만 바르고 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흉터가 남아 있다.
8월이 되면서 일단 서울에 올라가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오래 된 일이라 지금은 그 당시 우리 집안의 구체적인 경제 사정이 어떻고, 어떻게 해서 부모님께서 학원을 보낼 수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모른다. 나는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였다.
책 한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왔다. 고속버스를 타고 삼선동에 있는 형 하숙집으로 갔다. 내 생애 세 번째 서울 방문이었다. 한번은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서울에 와서 남산 등을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오래 되서 지금은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잘 모른다. 두 번째는 1971년 1월, 대학교 입시를 보기 위해 며칠간 서울에 와서 머물렀다.
서울은 거대한 도시였다. 대전에서 살다가 서울에 오니 나는 아주 작은 개미 같은 존재였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실업자가 서울에 올라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니 어떤 심정을 느꼈겠는가? 일단 삼선교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별도로 방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 작은 방에서 형과 함께 하숙생활을 했다. 형은 당시 의예과 2학년이었다.
형은 고2 여학생을 과외지도하면서 공부를 하느라고 고생하고 있었다. 형과 함께 남산에 올라갔다. 남산에서 바라 본 서울은 정말 대단했다. 그때만 해도 강남은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 주로 강북이 중심이었다.
삼선교 하숙집은 차에서 내려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선하게 보였다. 방 2개로 하숙을 치루고 있었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던 것과 같았다. 대전에서는 하숙집 주인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하숙생이 된 것이었다.
정일학원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고 시험을 보았다. 학원에 들어갈 때도 시험을 보았다. 그 시험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다.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학원에서 성적이 좋다고 학원비 전액 면제 특혜를 주었다. 시험은 국어, 영어, 수학만 보았다. 나는 영어와 수학은 자신 있었다. 몇 달의 공백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등학교 때 쌓아놓은 실력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정일학원에서는 매달 시험을 보았다. 그 시험에서 성적이 좋은 5명에게는 다음 달 학원비를 전액 면제해 주었다. 정일학원에 들어간 1971년 9월, 10월, 11월, 12월, 1972년 1월까지 5개월간 학원등록비 전액을 면제 받고 학원을 다녔다. 나는 지금도 정일학원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형편이 어려운 재수생에게 장학혜택을 주어 인생의 방향을 달라지게 해주었다.
1984년 정일학원 출신 30여명을 모아 정우회 모임을 만들었다. 홍철화 원장님께서도 흔쾌히 승낙하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와 안익순 후배가 주도해서 모임을 결성하고 이름을 정우회로 했다.
정우회에는 좋은 멤버들이 많이 있다. 모두 정일학원에서 재수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사회 각계 각층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도 자주 만나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내가 초대 회장을 지냈다. 정우회가 만들어진 다음 이 모임을 통해 홍철화 원장님과 많은 회원들이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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