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다
마침내 합격자 발표가 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합격했다. 눈물이 났다. 해냈다는 뿌듯한 자부심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도 나를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보셨다. 혼자 서울에 올라가 정일학원을 장학생으로 학원비도 전액 면제 받고, 중학생을 과외지도 하면서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다. 약한 몸을 가지고 혼자서 낯선 서울에서 견뎌냈다. 당시 몸무게는 50Kg가 겨우 될 정도였다. 삐쩍 마른 몸에 키는 커서 아주 언밸런스한 상태였다. 대학교 입학식에는 대전에서 부모님께서도 올라오셨다.
주위에서도 형제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에 다니는 것을 아주 부러워했다. 대전 대사동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었다. 입학을 하고 나서 창신동에 방을 하나 얻어 형과 함께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형은 의대 본과 1학년이었다. 매일 해부용 뼈나 두개골을 집에 가지고 왔다. 책은 대부분 영어로 된 원서였다. 작은 누나가 밥을 해주었다.
입학식을 하자마자 고등학교 선배 여동생과 그의 친구 과외지도를 시작했다. 이화여고 3학년생이었다. 나는 영어와 수학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과외지도에는 누구보다도 소질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 가르치는 일을 아주 좋아했다. 열심히 과외지도를 했다.
가르치던 참고서도 대개 동일한 것이고 자주 과외를 하다 보니 그 내용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4년 동안 과외를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그게 생활 습관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는 대학이 좋아서 그런지 내가 원하면 언제나 끊어지지 않고 구할 수 있었다. 주위에서도 나를 성실하고 실력 있는 과외선생이라고 추천을 많이 해주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고생하던 고등학교 시절과 재수생 시절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분위기에 휩쓸려 낭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환경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많이 돌아다녔다. 막걸리를 마시러 다녔고, 다방에 가서 차를 마시며 놀았다.
학교 가까운 곳에 이화예식장이 있었고, 지하에 이화다방이 있었다. 이화다방에서 DJ노릇을 했다. 레코드판을 골라서 틀어주었다. 무보수 자원봉사역할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어쩌면 골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모른다.
학교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교양과정을 주로 듣고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법학공부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학점을 따는데 급급했고, 고시공부는 앞으로 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때 공부하던 것과 달리 법학개론, 민법총칙과 형법총론 책을 들고 다니면서 장차 위대한 법학자나 법률가가 될 것을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캠퍼스의 봄은 그렇게 아름답게 지나갔고,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 부모님도 내가 혼자서 잘 해내갈 거라고 믿고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여름방학이 지나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과외지도 하기 위해 입주과외를 시작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큰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홍철화 원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함께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영어와 수학을 지도하였다. 달라진 것은 부잣집에서 생활을 하고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매우 안정된 분위기에서 내 공부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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