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동승아파트에서 생활하다
과외를 하기 위해 다니는 교통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매우 커다란 혜택이었다.
열악한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선생님 대접을 받으면서 생활하게 된 것이었다. 어렵게 살다가 부유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잘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니 별로 부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보람을 느끼고 무언가 추구하고 사는 내가 더 행복하게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고3 학생을 지도하면서 나는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의지와 정신력을 믿었고, 그에 반해서 환경은 부유하지만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의지가 약하고 외모나 노는 일에 치중하고 있는 상대와 비교하면서 더욱 삶에 자신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1년은 그렇게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성북동에서 동숭동까지 버스를 타고 다녔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못했다. 신입생이라 들떠서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야유회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데모를 했다. 입주과외를 하면서 1973년 1월까지 성북동 집에 있으면서 가르치던 학생이 대학입시를 볼 때까지 과외지도를 해주었다.
한 집에서 몇 달을 함께 살다보니 많은 정이 들었다. 그 학생이 시험 보기 며칠 전에 대리시험을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자기 친구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사진을 합성해서 잘 찍어서 붙이면 쉽게 적발해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만 해도 법을 잘 몰랐다.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되는 것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같이 지내던 학생이 그런 부탁을 하니 거절하기도 곤란했다. 그 학생 이름으로 된 수험표를 가지고 내가 대신 시험을 보러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시험 당일 아침, 세수를 하다가 끼고 있던 콘택트렌즈 한쪽이 빠져 분실되었다. 그것이 없으면 근시 때문에 도저히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신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가? 그래서 대리시험을 봐주지 않았다. 만일 그때 대리시험을 보았더라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속도 되고,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아도 내 인생은 끝났을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아무 죄의식도 없이, 법과 세상을 잘 모르고 법을 위반하여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그 때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성북동에서 나온 후 낙산에 있는 동숭아파트 방 1개를 얻어 작은 누나, 형, 여동생과 함께 생활을 하였다. 동숭아파트는 낙산 중턱에 있었다. 가파른 언덕이어서 올라 다니는 것이 힘들었다.
어린 나이에는 힘든 줄 몰랐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왔다 갔다 했다. 동숭아파트는 8평이었다.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방이 2개, 작은 부엌이 있고, 작은 광이 있는데 집주인은 방 하나를 우리에게 5만원에 전세로 주었다.
우리는 방 하나와 작은 광을 부엌으로 개조해서 살았다. 그리고 다락이 하나 있었다. 중앙 복도에 공동화장실이 있었다. 밤에 화장실 가는 일이 귀찮았다. 아침에 세수도 공동화장실에서 했다. 샤워를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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