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청운동에서 생활하다
방 한 개를 세준 사람들은 우리가 세입자이지만 좋은 대학에 다니는 것을 부러워했다. 우리는 그들을 집주인이라 부러워했다. 가족처럼 좁은 공간에서 서로가 불평하지 않고 협조적으로 잘 지냈다. 집주인인 노부부와 아들이 한 방에서 살았다.
산 중턱에 있는 아파트는 무척 추웠다. 한 겨울에는 전기스토브를 켜놓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했다. 찬바람이 부는 낙산을 올라 다니면서 진정한 추위를 실감했다. 아파트가 부실하게 지어져서 그런지 창문 사이로도 바람이 들어오고, 웃풍이 심했다. 여름에는 단열이 되지 않아 무척 더웠다. 더워서 저녁을 먹고 나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있다가 열이 식은 다음 내려와 잤다.
2016년 여름은 무척 더웠다. 매스컴에서는 온통 더위 때문에 난리였다. 39도 정도 올라가면 정말 더위를 실감할 수 있었다. 1994년 이후 최대로 심한 더위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더위를 느끼지 않았다. 옛날 동숭아파트에서 보낸 여름을 생각하면 특히 그랬다.
동숭아파트는 전망이 아주 좋았다. 서울대 문리대, 의대, 법대, 미대 캠퍼스가 다 보였다. 야경도 아름다웠다. 연탄을 사용하는 아파트라 연탄을 갈고 연탄재를 버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형은 그 아파트 5층에 사는 여고생을 과외지도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경찰서에서 간부로 근무하는 사람 딸이었다. 8평 아파트 2채를 터서 살았다. 피아노가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잘 살기에 아파트 2채를 터서 사는가? 어떻게 피아노까지 있는가? 공무원이 어떻게 저렇게 잘 살 수 있는가?
지금 생각하면 16평인데, 당시에는 무척 크게 생각되었던 것을 보면, 우물안 개구리는 보는 시야가 그런 것임을 느껴본다. 그 후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동숭아파트를 유심히 바라다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르내리던 가파른 언덕길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후 아파트는 모두 철거되고 공원이 조성되었다. 공원에 올라가 이제는 자취도 없어진 동숭아파트를 회상해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껴본 적이 있다. 가로등이 켜져있는 곳을 걸으면서 열심히 살던 삶의 흔적을 만져보았다.
동숭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물질적 환경적 어려움은 불행의 조건은 될 수 없었다. 고생하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고,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못먹는다는 것이 곧 불행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질보다 정신이 중요하다. 행복은 물질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에 기초한다.
1973년 5월 초 정일학원 원장님께서 연락이 왔다. 가정교사로 들어갈 용의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가르칠 학생은 정일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다. 재벌집에서 정일학원 원장님에게 입주과외를 할 성실한 대학생을 구해 달라고 했다. 원래 입주과외는 서울 출신들은 거의 안 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방출신들 역시 입주는 구속을 받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3년 5월 11일 입주과외를 시작했다. 색바랜 일기장을 꺼내 보니 그때 처음 그 집에 들어가 일기를 쓴 부분이 눈에 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청운동 어느 곳이다. 사방이 몹시 적막할 정도로 고요하다. 소음이 이곳까지는 지쳐서 오지 못하는 가 보다. 변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바뀌는 것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느끼고, 정신적인 동요를 겪어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어떻게 보면 커다란 변화일 수도 있는 오늘의 일이 조금도 신경을 자극하지 않으니 말이다.'
'별이 흐르는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구류처분을 받다 (0) | 2018.03.26 |
---|---|
15. 대학교 2학년 시절 (0) | 2018.03.26 |
13. 동승아파트에서 생활하다 (0) | 2018.03.26 |
12.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다 (0) | 2018.03.26 |
11. 대학입학시험을 보다 (0) | 2018.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