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신림동 캠퍼스에서 4학년을 보내다
요즘처럼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혼자 강의를 들으면서 책을 사서 독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비과학적인 방법이었다. 그냥 한 과목에 교과서 한 권과 문제집 한 권 정도를 반복해서 읽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다. 그 다음 고시계 같은 잡지를 보면서 추가로 자료를 보충했다. 객관식 시험은 따로 문제집을 풀었다.
1차 시험에 붙으면 그 다음 시험에 한번 1차를 면제해주었다.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공부하도록 채찍질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것으로 믿고 계셨다.
1975년 3월, 4학년이 되었다. 이때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동숭동에서 신림동으로 이전을 했다. 나는 삼양동에서 신림동까지 다니는 25번 버스를 타고 다녔다. 삼양동 종점에서 맨 뒷좌석에 앉는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면 겨우 서울역 부근을 통과하고 있다. 다시 한 잠을 더 자면 그때서야 신림동 종점에 내린다. 법대 건물까지는 또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강의실에 도착하면 그야말로 진이 다 빠진다. 피곤해서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이렇게 대학 4년 생활을 했다.
대학교 4학년 때 길음동에 있는 혜명고시원에 다녔다. 1975년 8월초 등록했다. 원래는 아이템플고시원이었는데 나중에 혜명고시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전고등학교 서춘수 선배님이 새로 지은 건물에 깨끗하게 독서실을 만들었다. 에어콘까지 설치되어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내가 살던 삼양동 아폴로극장 앞에서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혜명고시원에서 채규옥 선배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설동균 선배를 만났다. 세 사람은 트리오를 구성해서 함께 생활했다. 거의 매일 붙어 있었다.
공부를 하다가 힘이 들면 고시원 옥상에 가서 대화를 하며 놀았다. 가끔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삼겹살과 꼼장어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모두 털털한 성격에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고시원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만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함께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어려운 여건에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그냥 구경삼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고시원에 있다 보면 세상 보는 눈이 좁아져서 항상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사항도 중요한 정보이며, 재미있는 화제였다.
그러다가 나는 또 상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법대 학회지 FIDES에 게재할 원고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2개월에 걸쳐 '불법행위체계의 신형상과 소송상 입증책임문제'라는 방대한 논문을 원고지 174매에 정리해서 제출했다.
사실 이러한 학술 논문은 사법시험을 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노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고시란 기본서를 많이 읽고 문제집을 많이 보고, 핵심적인 사항에만 집중해야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지 교수들이 연구하듯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시험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쓸데없는 논문 작성, 굳이 할 필요도 없었고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하고 싶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일을 할 때는 꼭 필요한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면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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