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②

 

6월도 다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선 보일 때 화사함을 마음껏 자랑했던 장미도 점차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단순한 푸근함으로 바뀌었다. 진한 붉은 색의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던 그녀는 정현에게 하나의 구원이었다.

 

그녀는 생명이 가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추상적이었던 삶을 구체적으로 손에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났다. 그녀는 장미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장미를 보면 정현은 언제나 마음이 아팠다.

 

산다는 건 목숨만을 유지하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삶에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했다. 가슴이 차가우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함께 갖추려고 애썼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체로 가슴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정현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갑자기 머리 속이 어지러워졌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의미를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머리 속으로 밀려 들었다.

 

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어려운 질문들이 공룡처럼 커다란 무게로 정현을 짓누르고 있었다. 정현은 견딜 수 없는 억압에 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졍현은 눈을 감았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직 일에만 파묻혀 살았다. 나름대로 생각했던 정의를 지키려고 발버둥쳤다. 오로지 한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영혼까지 던졌던 사랑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인가? 슬픈 화석으로 변해 버린 사랑 때문에 정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현은 사무실에 있는 카셋트에서 평소 잘 듣는 곡을 찾았다. Kansas가 그토록 열창하던 Dust in the wind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 정현이 느끼고 있는 심정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I close my eyes/ only for a moment/ And the moment's gone/ All my dreams/ Pass before my eyes a curiosity/ Dust in the wind/ All they are is dust i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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