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8)
공칠은 서울에서 재수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아버지 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나 공칠에게 아버지 하는 일은 도저히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공칠은 군에 입대했다. 해병대를 지원해서 들어가서 고된 훈련을 받았다.
해병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공칠은 여기 저기 취직할 곳을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흥신소로 유명한 민첩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사지원원서를 보냈다.
공칠은 이력서에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대학 진학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사업을 잘 하고 있어 아버지 일을 도와주면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는 사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경찰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니 흥신소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적었다.
그리고 해병대에서 아주 열심히 군복무를 해서 사령관표창까지 받았다고 적었다. 생각 같아서는 아예 해병대에서 장기복무를 지망해서 평생 군에서 근무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자꾸 전역하라고 해서 부득이 제대를 했다고 적었다. 채용만 해주면 목숨을 바쳐 일을 배우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썼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너무 잘 썼기 때문에 공칠은 민첩 사장 앞에 가서 면접을 볼 기회를 얻었다. 면접실은 특이했다. 검찰청 특별조사실처럼 유리창은 하나도 없는 작은 사각의 공간이었다.
벽은 모두 하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다. CCTV도 설치되어 있었다. 면접은 오직 민첩 사장만 보았다. 민첩 사장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잠바 차림으로 나타났다.
메모지도 없고, 찻잔도 없이 오직 하얀색 탁자위에 마주 앉았다. 의자도 순백의 흰색이었다. 형광등도 백색으로 마치 수술실처럼 원형으로 중앙 가운데 아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하얗기 때문에 공칠의 눈에는 마치 민첩 사장이 투명인간처럼 보였다. 마치 죽은 영혼처럼 느껴졌다. 민첩은 아주 낮은 소리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공칠도 따라서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답변했다.
민첩은 공칠의 가족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물어보았다. 특히 공칠의 아버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공칠은 아무 생각없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갑자기 바깥의 찬공기가 극심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마치 죽은 사람과 작은 폐쇄된 동굴안에서 언어의 유희를 하다가 추방된 느낌이었다.
민첩은 깜짝 놀랐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드니, 공칠은 민첩 아버지와 원수지간인 공칠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민첩은 아버지와 공칠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옛날 일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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