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7)
다음 날 공칠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그 남자는 공칠에게 어제 있었던 일은 비밀로 붙여 달라고 하면서 준비한 봉투를 내밀었다. 공칠은 감각적으로 그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미안하네, 젊은이! 어제는 내가 실수했네. 이해해 주고, 이건 내 성의니까 받아둬요.”
“아니 괜찮습니다. 저는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장소가 워낙 으슥한 곳이어서, 가끔 성폭행도 일어나고 해서, 제가 자진해서 위기에 처한 여자들을 구해주기 위해 하는 봉사활동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선생님을 추격했던 이유는 차 안에서 너무 오랜 시간 그것을 하고 있어, 아무래도 여자가 성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과격한 성행위를 하고 있어서 그랬던 거예요. 저는 비록 차안이라도 부부간에 성관계를 하는 사람들은 단속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그걸 하도록 보호해주는 사람입니다. 카섹스는 이색적인 맛이 있어서 섹스리스 부부에게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여자분은 사모님이신가요?
“응. 맞아요. 우리 집사람이예요. 모처럼 같이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데이트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아 그래요. 미인이시던데요. 선생님과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저도 어디선가 본 얼굴이예요. 혹시 연예인 아닌가요?”
“응. 왕년에 대학 다닐 때 메이퀸으로 뽑힌 적도 있어요. 그런 말 들으니까 멋쩍구먼. 하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것도 좋은 인연인데,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도록 해요.”
이렇게 헤어졌다. 공칠로서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공칠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공칠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후 5개월쯤 지나서 그 지역 시장 선거를 치루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송에 후보자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공칠이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공칠은 깜짝 놀랐다. 그 사람 프로필을 보니, 시청에 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몇 달 전에 공칠의 단속에 걸렸던 카섹스사건 때에는 시청의 현직 국장의 신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시청 국장이라는 높은 분이 아주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와 카섹스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위선자가 시장에 당선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칠은 젊은 나이에 혼자 이상한 정의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몇 달 전의 일이었지만, 당시 그 국장이 너무 격력하게 카섹스를 하고 있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어서 공칠도 매우 심하게 성적 흥분을 느낀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공칠은 국장과 같은 사회 저명 인사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젊은 연예인을 애인으로 두고, 카섹스나 하면서 시청에 가서는 아주 모범적인 사람처럼 떠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런데 마침 공칠이 모시고 있는 김민첩 사장은 시청 국장과 라이벌로 선거에 나온 반대 후보 정국영을 지지하고 있었다. 민첩은 정국영과 몇 년 전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오고 있는 사이였다.
3년 전 민첩은 정국영의 부인으로부터 정국영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받았다. 민첩은 당시 정국영이 젊은 여자 애인에게 오피스텔을 얻어주고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정국영의 부인에게 전해주면 성공보수로 500만원을 더 받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민첩은 워낙 약은 사람이었다. 그 수집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정국영에게 가서 협상을 했다.
“이 자료를 당신에게 줄 테니, 2천만원을 달라. 당신 부인에게는 증거를 못찾은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겠다.”
이렇게 협상을 해서 민첩은 정국영에 대해 수집한 자료를 부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모두 정국영에게 넘겨주었다. 그 대가로 2천만원을 받았다. 그런 다음부터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이 술도 마시러 다녔고, 각자의 애인을 대동하고 같이 여행도 다녔다. 서로의 비밀을 지켜줄 의리 있는 사람들이었고, 바람 피는 취향도 비슷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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