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남과 재혼녀 (1)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Where do I begin this tragic story?) 이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를! 나는 이 사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인간의 불쌍한 모습,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하면서 연약한 실존이 겪는 고통과 고난을 생각했다.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예상치 못하는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럴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칫 잘못하면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수렁에 빠져 신음할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 죽어가면서 혼자 모든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사실, 잘못되면 그 누구도 도움이 못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비정한 현실을 생각하면서 인간지옥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현실, 고통의 본질, 그리고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합당한 하나님의 뜻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고난을 당해도 그 안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편 119:67~72)'
재혼남과 재혼녀 (2)
철수(43세, 가명)는 구속되어 있었다. 순간의 잘못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그 대가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상해치사죄(傷害致死罪)사건에 있어서 피고인의 신분이다. 그 전까지는 회사의 임원이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사건 때문에 피고인이라는 형사소송법상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법률가들은 그를 피고인(被告人)이라고 부른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은 중요치 않다. 피고인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불리워진다. 구치소에서는 수감자가 된다. 그리고 수감번호가 붙여진다. 호적상의 이름은 아주 드물게 확인될 뿐이다.
피고인 겸 수감자인 철수는 법에 의해 자유가 통제되었고, 사슬에 묶인 개처럼 끌려다니고 있다. 아주 제한된 길이의 끈에 묶여있는 개를 볼 때가 있다. 그 개는 자유롭게 초원을 돌아다니는 들개와 똑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똑 같이 뛸 수 있고, 똑 같은 것을 먹고, 똑 같은 방식으로 잠을 자고, 수컷과 암컷이 종족번식을 위해 교미를 한다. 그러나 묶여 있는 개와 초원의 개는 전혀 다른 존재다. 하나는 살고 싶지 않은 상태고, 하나는 살고 싶은 상태에 있다.
구치소 안에서는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이 통제되고, 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생활리듬에 따라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강제된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옆으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수감자들은 이런 저런 근심과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갑자기 달라진 잠자리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옆사람이 언제 잠꼬대를 하면서 코를 쳐서 부러뜨릴지도 모른다. 동성 간에 살이 닿는 촉감도 좋을 수는 없다. 더운 여름에는 사람의 살이 닿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술과 담배에 찌들은 사람들과 한방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코도 아예 닫아놓고 지내야 한다.
평소 즐겨하던 컴퓨터 인터넷도 할 수 없다.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은 그게 가장 힘이 들 것이다. 속이 상할 때 술을 마실 수도 없다. 가슴이 답답할 때 담배도 피울 수 없다. 가을을 맞아 그 은은한 단풍을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철수는 TV에서 사람들의 단풍놀이 장면만 보아도 숨이 막혔다.
재혼남과 재혼녀 (3)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자체로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서야 행복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렇다. 인간에게는 평안 그 자체가 지극히 커다란 행복이다.
마음 속에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상태, 그런 평안이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지만, 막상 평안을 상실한 고통을 겪게 되면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기본요소인지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기본적인 내적 심리적 평안을 전제로 더 나아가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평안은 행복을 추구하기 이전에 인간 실존이 갖추어야 할 삶의 기본적인 전제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지고 있어도 하늘은 까맣게 보이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하늘색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하늘과 떨어져 존재하지 못한다. 그게 동물과의 차이다. 무의식 상태에서도 사람은 하늘을 생각한다.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생을 마감하면 다시 돌아가야 할 영원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어두우면 하늘색이 달리 보인다. 파란 하늘도 까맣게 보이고, 노랗게 보인다. 갑작스러운 불행을 당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하늘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머릿속은 하얗게 백지상태가 되며 하늘은 까맣게 변한다.
재혼남과 재혼녀 (4)
철수는 딱딱한 나무 바닥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욥기 7:4)' 구치소의 밤은 길다.
그 긴 밤을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지내야 한다. 실존의 외로움과 고통, 질병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수감자들은 오늘도 밤에 옛날 욥이 그랬듯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불행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들이 많다.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갑자기 당하는 불행한 일들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떠한 것이며, 그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과 답을 제시한 사람들은 없다.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욥기 5:6~9,16)'
평범하게 살아온 회사의 중견 간부가 갑자기 구속되어 직업적인 범죄꾼들과 한 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다른 환경, 사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좁은 방에서 몇달씩 지내야 한다.
그들은 서로를 경멸하고 있었고, 똑 같이 세상을 증오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고, 남에 대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갇힌 공간에서는 누구나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구속되면 어쩔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폐쇄공포증을 가지고 있어 구속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죄를 짓고 추락한 자기 자신도 싫어지는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곁에 있는 사람들조차 싫어지는 상황이 되면 구속돤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한다.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교도관은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다.
재혼남과 재혼녀 (5)
열악한 구치소 환경에다가 이런 사람들의 조건, 자기 자신의 내적 여건을 감안하면 구치소는 가장 무서운 인간지옥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 살아나오는 것은 무서운 지옥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교도관들은 무서운 존재였고, 차디찬 감방에서 삭막한 사막을 걸어가야만 했다. 불안과 공포는 모두 느끼는 공통과목이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치소에서 교도소에서, 그리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신음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모두 상실한 채 동물처럼 묶이고 갇혀 생활하고 있다. 그들에게 보장되는 인권과 인격은 그야말로 형식적인 가치일 뿐이다. 사회가 존속하는 한, 인간이 원죄(原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법이 존재하는 범위에서 이런 지옥현상은 영원히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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