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지도를 하는 여학생을 혼자 짝사랑하다

 

윤석은 대학교 3학년때, 그러니까 의대 본과 1학년 때, 3 여학생을 과외지도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찾아가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혜경은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나,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다. 부모님들은 대기업의 중역이었고 매우 가정적이었다.

 

가족들이 외식도 자주 하고, 공연을 함께 가고, 주말에는 지방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혜경은 늘상 가족들이 무엇을 함께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과외공부를 시작했다. 윤석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간접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혜경은 아주 예뻤다. 특히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치아가 매력적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멋을 많이 부렸다. 윤석이 갈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윤석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혜경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많은 남학생들로부터 과외지도를 받아서 그런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과외지도만 받겠다는 입장이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이런 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두 사람이 똑 같은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개 한 쪽에서 오버하게 된다. 상대방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혼자 좋은 감정을 갖고 고민한다.

 

환경이나 여건이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데도 상대방과 잘 맞을 수 있고, 노력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한다. 물론 열심히 하면 움직이지 않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마음을 잡았다고 해서 영원히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윤석은 혼자 좋아하기 시작했다. 전혀 내색할 수 없었지만, 혜경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혜경과 공부를 하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대개 혜경이 먼저 벌써 9시가 넘었네요.”라는 말을 꺼냈다. 윤석은 열심히 가르치다가 혜경의 말을 듣고 과외지도를 마무리 지었다.

 

서울 올라와서 힘든 대학 공부를 하고, 과외지도를 하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통이 혜경의 존재로 잊혀졌다. 일기장에 혜경의 이름이 자주 올라갔다. 혜경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윤석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그 병은 저 혼자 깊어가고 있었다. 강물이 흘러가면서 점차 깊어져 나중에는 깊은 바다의 심연으로 가듯이 윤석의 짝사랑도 시간이 가면서 북한강에서 한강을 거쳐 서해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윤석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어려운 집안을 생각하면서, 빨리 의사가 되어 부모님들의 고생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여자 문제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혜경은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교복에서 자유복으로 갈아입은 혜경을 밖에서 처음 만난 윤석은 흠칫 놀랐다. 천사를 만난 것 같았다. 대학로에서 함께 찻집으로 들어갔다.

 

대학생활이 어때요?”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되어 편해요.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려고 해요. 부모님도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하라고 하셨어요.”

그동안 시험 준비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잘 몰랐는데, 대학 들어와 보니 선생님이 다니는 의대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공부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힘드시죠?”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윤석은 꿈속에서도 보고 싶어 하던 그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의대 공부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같아 기분도 좋아졌다. 윤석은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간 윤석은 번민에 빠졌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뾰족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혜경이 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했더라면 자신이 1년간 더 과외지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상태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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