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한 것인지, 화간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사설재판부에서 심판을 받았다

 

건달 음복수(40세, 가명)가 민첩 아버지, 나질속에게 복수를 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사설경호원 세 사람은 비상을 걸고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음복수는 폭력전과가 18번이나 되는 거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결판을 보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음복수는 교도소를 겁을 내지 않고, 징역형을 선고 받고 감방에 입소하는 날에도 아주 태연하게, 몹시 당당한 자세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마치 새로 원룸이나 지하 단칸방을 얻어서 이사하는 기분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적응을 잘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뿐만 아니라 음복수는 정의감이 투철해서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마당히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건에서는 음복수에 대해 법정에서 검사가 징역 1년을 구형하자,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음복수 건달은 판사에게 손을 들고, “저는 제가 저지른 범죄가 중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사님은 왜 그렇게 적은 징역형을 구형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사건에서 징역 2년을 구형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사님께서 징역 2년을 선고해주시면 고맙게 생각하고, 징역을 잘 살겠습니다.”라고 엉뚱한 발언을 했다.

 

갑자기 법정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방청객들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니! 세상에 저런 착한 사람이 있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검사가 구형을 하면 너무 많다고 난리를 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검사가 구형한 징역 1년보다 1년을 더 살겠다고 하는가?’라고 궁금해 했다.

 

어떤 여자는, ‘저 피고인은 아마 밖에 나가도 갈 곳이 없어서 교도소에서 오래 살겠다는 것인가 봐요. 너무 불쌍하네요.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젊은 판사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피고인 음복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장시간 침묵이 흘렀다.

 

“피고인은 정말 징역을 2년 살고 싶은 거요?”

“예. 판사님. 저는 그동안 교도소에서 오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왠만한 사건에서는 어느 정도 징역형이 선고된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징역을 살고 밖에 나가면 법을 잘 지키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생활하겠습니다.”

 

이런 태도에 감명을 받은 판사는 그 날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 음복수를 보석으로 석방해주고, 2주일 후에 판결 선고를 하면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붙여 징역을 가지 않도록 선처를 해주었다.

 

민첩 아버지 사설경호원들은 대책을 상의했다. 첫 번째는 만일 음복수가 먼저 나질속에게 선제공격을 하면 그 공격행위는 즉각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상되는 공격행위는 음복수가 나질속을 향해 칼이나 도끼 같은 흉기를 가지고 달려들면, 경호원들이 그 흉기를 빼앗고, 제압한 다음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음복수가 염산을 뿌리면 그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염산공격을 막을 장비를 준비했다. 세 번째는 즉각적인 공격행위보다는 대화를 하자고 하면 음복수와 나질속 간의 대화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두 사람의 몸을 수색해서 무장을 풀고 평화적으로 협상을 하도록 하기로 했다.

 

세명의 경호원들이 긴장한 가운데 마침내 낮 12시에 음복수가 나질속을 찾아왔다. 그런데 의외로 음복수는 당장 폭력을 행사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먼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커피숍으로 갔다.

 

“내가 감방에 가 있을 때 당신이 내 애인을 강간했는데, 그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말해봐!”

“나는 당신 애인을 강간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동의해서 했던 거요. 그런데 무슨 책임을 지라는 말이요?” “그런 거짓말을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거야. 내 애인이 분명히 당신에게 강간 당했다고 하는데, 그 여자가 거짓말 할 리가 없잖아?”

 

결국 두 사람은 강간인지 화간인지를 놓고 말싸움을 벌였으나 결론은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호책임자가 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의 설전을 듣고 있다가 제안을 했다.

 

“정말 이 사건은 말로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지금 와서 오래 된 사건을 선생 애인이 이 사람을 강간죄로 고소를 한다고 해서 법에서도 어떤 결론을 내줄 수는 없을 것 아니요? 법으로 해결이 어렵다고 두 사람이 반반씩 양보를 할 수도 없는 거 아니오? 그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 사람은 강간이라고 하고, 이 사람은 화간이라고 하니, 반반씩 하면 이 남자가 그 여자의 윗부분은 동의를 받아서 하고, 아래부분은 강제로 했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느 부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너무 큰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소? 가슴은 만져도 좋다고 했고, 아래는 강제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판단을 하면 음복수 씨가 크게 유리할 것이고, 그 반대로 하면 나질속 씨가 좋아서 펄펄 뛸텐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음복수와 나질속은 경호책임자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여서 그런지 경호책임자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태도로 나왔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 세 사람이 심판부를 구성해서 두 사람과 그 여자를 모두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세 사람이 합의해서 결론을 내리면 어떻겠소? 물론 우리는 나질속 선생의 돈을 받고 경호를 해주고 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공평하게 정의로운 판단을 할 자신이 있어요.”

 

음복수와 나질속은 이런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서약서를 썼다. “우리 두 사람은 나질속의 사건에 관하여 모든 판단을 세 사람으로 구성된 합의심판부에 맡기고 그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만일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하여 금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하기로 합니다.”

 

일주일 후에 사설 재판이 열렸다. 재판 장소는 처음에는 법원에 요청해서 법정을 빌려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법원에 물어보니까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해서 포기했다. 서울역 구내에 있는 유료세미나실을 빌리려고 했는데,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용한 곳이 좋을 것 같아서, 올림픽공원 구내 잔디밭으로 심판장소를 정했다. 심판시간은 법원에서 하는 것처럼 오전 10시에 시작했다. 사설경호원 세 사람은 법복 비슷하게 검은 색으로 맞추어 입었다. 그리고 당사자 두 사람은 음복수는 청색, 나질속은 주황색으로 입고, 증인인 여자는 하얀 옷을 입도록 했다. 잔디밭에는 야외용 매트를 다섯장 넓게 깔았다.

 

심판관 세 사람은 휴대용 접는 의자 작은 것을 준비했다. 조그만 탁자도 준비해서 심판장이 칠 의사봉도 준비했다. 심판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4절까지 있는 것도 몰랐으므로 부득이 복사를 해서 그것을 보면서 불렀다.

 

여섯 명이 갑자기 잔디밭에서 일어나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디 정신병원에서 잠시 외출나온 사람들의 야유회인 줄 알고 구경도 하지 못하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애국가를 부를 때 반주는 스마트폰 세 개를 동시에 틀어놓고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다른 여자를 건드리면 반드시 피의 복수를 당한다. 그 여자의 애인이 절대로 가만 두지 않는다. 여자는 애인이 무서워서 무조건 강간을 당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사실대로 화간이라고 시인하면 그 자체로 주먹이 날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거짓말 때문에 강간범으로 누명을 쓰는 남자는 아주 비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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