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
한 여자가 플랫폼에 서 있다. 작은 가방을 하나 들고 멀리 떠난다. 남쪽 끝으로 가려고 한다.
그녀가 떠나는 곳은 출발역이 아니다. 한 남자가 있는 곳을 떠나려고 한다. 그 남자의 기억을 지우려는 것이다. 다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남자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유부남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가정을 버릴 수 없어서,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여자의 심정이고 지론이다.
남자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다른 부분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고 한다. 양립을 주장한다. 사실 시간이 가면 그가 지키려고 했던 가정은 어차피 깨지게 되어 있다. 설사 완전히 깨어지지 않더라도 상처 투성이인 형해화된 형태만 남아있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왜 사랑 때문에 남자의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가?’
여자는 KTX에 오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차창을 두드린다. 사랑은 아직 뜨거운 상태다. 사랑이 비를 맞고 있다. 비가 사랑의 온도를 낮추지도 못한다. 비는 거꾸로 사랑의 감촉을 만끽하고 있다. 비가 사랑이다. 사랑이 비가 되고 있다. 밖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사랑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그 사랑은 추상적이다. 현실적이지 않다. 아마도 사랑이 아닌 꿈속의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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