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랑과 익숙한 사랑>
멀리서 가을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가을은 뚜렷한 색깔로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가을의 비밀을 보여준다. 가을은 사랑이라는 낯선 단어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가을은 애당초 사랑을 원치 않는 존재였다. 사랑 따위의 시시한 형상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좋은 날씨에, 가을이 펼쳐놓고 있는 황홀한 풍경을 잊어버리고 낯선 사랑과 익숙한 사랑 앞에서 어리석은 방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랑은 원래 낯선 관계이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사랑은 그 깊이를 잴 수 없다. 사랑은 끝없는 갈증을 일으키는 묘한 것이며, 그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 멀어져 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얼마나 상대방을 원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만큼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랑이 실종되는 순간 그는 삶의 의미를 동시에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낯선 사랑은 우리에게 곧 익숙한 사랑으로 자리 잡는다. 사랑이 제자리를 잡는 데는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마력이 있다.
자신의 포로로 만들고 노예처럼 부리는 사랑은 보이지 않는 위대한 존재이다. 그의 위대성은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심한 마비증상을 일으켜야 더욱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맛볼 수 있게 된다.
사랑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사랑은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하고 일상의 생활 속에 융화되어 다른 것들과 같은 정도로 낮아진다.
사랑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제왕이 되지 못하고, 평민의 위치로 전락하게 되면 우리는 주인을 잃어버린 노예처럼 방황하고 실망한다. 불안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사랑으로부터의 독립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더 깊은 늪에 빠지는 신세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또 다른 주인을 찾아 헤매지만 새 주인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종전의 주인이 가졌던 강력한 카리스마에 젖어들었던 사랑의 노예들은 옛 주인과 비교하며 이제는 더 이상 노예의 위치에 있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사랑에 대한 저항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을 가져온다. 사랑을 부정한 실존은 사랑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왜곡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랑의 가치를 폄하하고 사랑에 대해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기존에 얻었던 사랑에 익숙해지면서도 사랑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의 절대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새로운 낯선 사랑을 찾아나서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 될수록 진미를 가진다. 사랑의 진정한 가치는 오래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영원성은 사랑의 가치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이 좋은 가을의 날씨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을이여! 그리고 사랑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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