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의 잔머리

변호사로 일하면서 나는 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기사건을 보고 듣는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기꾼은 참 머리가 좋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교묘한 수법을 연구해 낼까?’ ‘참 좋은 아이디어고, 어리석은 사람이 속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사기의 본질이고 현상이다. 가까운 친구가 급하게 상의를 한다. 돈을 5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한다. 너무 사정이 딱해서 빌려주지 않으면 친구 사이가 끊어지고 원수가 될 상황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 어려운 입장이 된다. 돈이 많아 남아 돌 사람이면 상관 없다. 까짓거 5백만 원 떼어먹혀도 문제가 안 되면 괜찮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5백만 원이면 큰 돈이다. 매달 8만 원씩 적금을 해서 5년이 지나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돈이다. 5백만 원 어치 택시를 타면 꽤 많은 횟수를 탈 수 있을 것이다. 호프집에 가서 치맥을 먹어도 수없이 먹을 수 있다. 한번에 3만 원 어치를 먹으면 무려 170번이나 갈 수 있다.

그런데 친구가 어렵다고 하고, 또 며칠 있다가 갚는다고 하니 꾸어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이미 채무가 많고, 돈을 꿀 때 벌써 변제능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빚이 많아 돌려막기에 급급하고, 일단 빌리면 끝이다.

돈을 빌려간 친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입장이 곤란하니까 전화도 받지 않는다. 수없이 전화를 하면 그때 마지못해 전화를 받고 간단히 끊는다. 며칠 만 더 기다려 달라는 취지다.

결국 돈을 빌려주고 끝내 받지도 못하고, 속만 엄청나게 썪는다. 친구와는 원수가 되어 더 이상 만나지도 않게 된다.

그렇다고 친구를 상대로 형사고소하자니 그렇다. 민사소송을 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고 소멸시효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법률을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까운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괴감만 쌓인다. 우울증 초기 증세가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이 어리석고, 세상 이치를 잘 몰라서 그런 거다. 상대방도 사기죄가 되는 줄 모를 거고, 친구 사이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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