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1)
코리아타운에서는 영어가 필요없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많았다. 성철규 코치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미국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hellow나 okay, thank you, good morning은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러나 맥도날드에 가서 주문할 때도 미국인은 너무 빨리 무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메뉴사진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원하는 것을 먹을 수는 있지만, 버거셋트에서 콜라를 커피로 바꿔달라는 말 같은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버거셋트에서 커피를 선택하는 일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니까 종업원은 철규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기분이 나빴는데, 철규는 강한 삶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부러 종업원에게 자꾸 이것 저것 말을 걸어서 native speaker의 원어민 발음을 익히려 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미국에 오기 전에 tv에서 개그콘서트나 야구 경기를 보는 대신 cnn을 열심히 보거나 이태원이나 홍대 앞에 가서 미국 사람을 친하게 지내서 생맥주를 마시면서 영어회화를 배울 걸 그랬다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한국 교포나 유학생들이 미국 레스토랑에서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물론 가만히 들어보고 있으면 한국 교포나 유학생들이 발음은 미국 원어민이 하는 발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건 철준에게도 쉽게 구별이 되는 부분이었다.
미국에서 며칠 있으면서 느낀 것은 영어가 듣기 부드럽고 말할 때 입모양이 예쁘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무슨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철준은 서울에 돌아오면 헬스장에서 코칭을 할 때 가급적 영어를 많이 사용해야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에 가는 즉시 홍대앞에 가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경화를 만나러 왔는데, 경화의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고,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철준은 시차가 바뀌어 밤과 낮이 거꾸로 돌아가니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에서처럼 24시간 영업을 하거나 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나 식당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싸구려 모텔의 작은 방에서 잠도 오지 않는데 틀어박혀있는 것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모텔에 최종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위스키, 화이트 와인, 캔맥주를 잔뜩 샀다. 물론 안주도 많이 샀다. tv를 켜놓고 혼자 술을 마셨다. 채널도 많지 않았지만, 영어로 하는 방송이라 그림만 보는 것이니까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처럼 성인방송을 틀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상업성 광고는 엄청나게 화려하게 하고 있었다. 고독했다. 실존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철준은 경화와의 첫만남부터 그동안 두 사람이 겼었던 희로애락을 떠올렸다.
그리고 목숨과 바꿀 정도로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순수한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여자의 연약함과 비겁함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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