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2)
철준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골아떨어졌다. 꿈속에서 가위에 눌려있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경화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철준의 가슴 위에 앉아 강하게 누르면서 철준을 쏘아보고 있었다.
순간 철준은 너무 무서웠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도 아닌 중간 형태의 괴물이었다. 철준이 일어나려고 두 손으로 밀어도 그 여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철준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뚝뚝 철준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제끼고 큰 소리를 내며 웃는 것이었다. 철준은 소름이 짝 끼쳤다. 식은 땀을 흘렸다. 다시 그 여자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데 철준은 무슨 말인지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된 것 같았다. 철준이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서 그 여자를 밀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뒤로 넘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철준은 살았다 싶어서 아주 통쾌함을 느꼈다.
그 여자는 사라지고 철준은 꿈에서 깨었다. 너무 무서웠다. 꿈이어서 천만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여자 때문에 철준의 팬티가 흠뻑 젖어있었다. 평소보다 양이 두 배나 되었다.
무슨 꿈이었을까? 경화가 죽은 것일까? 아니면 철준을 저주하고 있는 것일까? 철준은 식은 땀을 씻으며 작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냈다. 다시 술에 취하고 싶었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러 코리안 레스토랑으로 갔다.
철준은 혼자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외롭게 앉아 있었다. 이제는 미국에서의 방황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다. 경화가 없는 LA도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한국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잘 못보던 분인데요.”
“예. 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곧 서울로 돌아갈 겁니다.”
“그래, 관광은 잘 하셨습니까? 무척 피곤해 보이시네요.”
“예. 그저 그러네요. 근데, 사장님은 이곳에 사시나요?”
“예. 저는 이민온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어요. 이곳 터주대감이지요.”
“아 그래요.”
“이곳에는 아는 분이 계신가요?”
그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철준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30년이나 LA에서 생활한 교포라고 하기에 혹시 경화에 대해 물어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은 제가 아는 사람이 LA에 사는데, 이번에 온 기회에 한번 만나볼까 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네요.”
“아! 그래요. 혹시 누군지 말해주시면 제가 알아볼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워낙 이곳에서 오래 살고 발이 넓어서 한국 사람들은 대개 다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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