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2)
은영이 일일주식회사에 들어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림은 중학교 때부터 남다른 소질을 보여 열심히 했고, 그래서 전공으로 삼았으나, 막상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떻게 일일주식회사에 사원으로 들어왔다가 사장 눈에 띄어 비서로 근무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사장 비서는 상당한 힘을 가진다. 임직원들이 비서에게 잘 보여야 편하기 때문에, 비서는 사장 이외의 사람들에게 굽실거릴 이유가 없다.
은영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그리고 그 여파로 아버지는 감방까지 다녀왔다. 징역을 1년 넘게 살고 나왔다. 은영은 동생 2명과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아버지 옥바라지도 모두 은영의 몫이었다. 이때 만난 사람은 유부남이었다. 은영에게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은영은 자연스럽게 그 유부남의 애인이 되었다. 은영은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 사람과 연애를 했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처음 어느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에도 그 남자는 은영에게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주고, 돈을 넉넉하게 주어서 회사에서는 은영이 부잣잡 딸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은영은 유부남과 하면서도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 유부남의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유부남과 결혼한다는 생각도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답답한 현실에서 남자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나중에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은영은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그 남자가 1년 만에 은영의 가까운 여자 친구와 애인이 되면서 은영을 멀리했다. 그때 은영이 받은 충격은 정말 대단했다. 정말 자신이 좋아했고, 순수한 첫사랑이었고, 첫경험이었다.
물론 그 남자친구와 은영의 여자 친구는 그후 헤어졌지만, 은영은 이 일로 인해서 남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남자로부터 받은 트라우마가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를 별로 믿지 않게 되었고, 섹스에 대한 관념도 무뎌졌다.
어느 날 일일주식회사의 정 사장과 임원 3명이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은영도 출장자 명단에 끼어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여비서가 외국에 업무차 출장을 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회사에는 영어와 일본어를 잘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은영은 영어도 못하고, 일본말도 전혀 못했다.
그런데도 일본에 사장 일행과 같이 출장을 간다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영 입장에서 안 가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회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비서직에서 일반 직원으로 부서를 옮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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