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3)
은영의 남자 친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왜 따라 가느냐고 따졌다.
“네가 가서 할 일도 없잖아? 그런데 왜 여비서가 일본까지 따라가서 무엇을 하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혹시 사장이 해외에서 유혹하려는 것은 아닐까?”
“글세, 모르겠어. 하지만, 어쩌겠어. 회사에서 내가 할 역할이 있기 때문에 출장을 같이 가자는데, 거절할 수 없잖아?”
“응. 알았어. 하지만 출장가더라도 꼭 필요한 비즈니스만 하고,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 같은 곳에는 가지 마.”
“물론이지. 내가 여직원이지, 남자들 놀이개는 아니잖아.”
은영은 그래서 동경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출장을 갔다. 가서 은영이 하는 일은 그냥 사장 따라 다니는 일이었다. 특별히 차심부름을 할 일도 없었다. 주로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회의를 하고, 거래 업체 회사를 방문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데 동석하는 것이 전부였다.
출장 마지막 날 밤, 정 사장은 갑자기 은영을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다. 어떤 서류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다달라고 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속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 사장은 원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었다. 담배도 계속 피웠다. 나이는 62살이었다. 돈이 많아 서울에서 최상류층에 속했다. 부인도 미인이라고 들었고, 자녀들도 모두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집안이었다.
은영은 사장이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그것도 사장이 혼자 있는 호텔 방으로 가져다 달라는 것을 못마땅했다. 같이 따라간 남자 직원도 있는데, 왜 하필 여자인 자신을 호텔방으로 오라고 하고, 약을 사가지고 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은영은 사장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장은 모든 사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남자 직원들은 사장 앞에 가면 벌벌 떨었다.
부회장은 성격이 급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직원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큰소리로 난리를 치고, 심지어는 재떨이를 집어던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가난한 집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의지가 강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은영이 약을 사가지고, 요구한 서류를 가지고 호텔방으로 가자, 정 사장은 목욕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은영은 민망했다. 호텔방에서 남자와 단 둘이 있는데, 그것도 목욕가운만 입고 쇼파에 앉아 있으니 이상했다. 은영은 서류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나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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