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9)

한편 명훈은 지현으로부터 전화가 와도 바쁘다는 핑계로 받지 않고, 문자로만 답을 했다. 당분간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취업준비를 해야 하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현이 계속해서, 하루에도 서너번씩 장문의 문자를 보내니 미칠 지경이었다.

지현은 명훈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어떤 반응을 보이든, 일방적으로 ‘명훈씨! 정말 사랑해요. 죽을 때까지 나만 사랑해줘요. 아이는 건강하게 뱃속에서 잘 놀고 있어요. 꼭 명훈씨를 닮은 아이가 나올 거예요. 공부 열심히 하세요. 건강 잘 챙기고요.’라는 취지의 문자를 계속해서 보냈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의 배를 사진으로 찍어 아이가 그 안에 있음을 확인시켜주려고 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배가 조금씩 나온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명훈은 괴로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명훈은 지현이 아주 나쁜 여자로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주제에, 집안도 형편없고, 얼굴도 못생긴 여자가, 몇 번 관계를 한 것을 가지고, 몰래 아이를 가지고, 완전히 어린 나를 협박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서 들어본 꽃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시간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기도 싫고, 단지 지현이 문자만 보면 징그럽고 소름이 끼쳤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다가도 지현이 생각이 떠오르면 성욕도 떨어질 정도였다.

명훈 생각으로는 자기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이었다. 그냥 우연히 만나서 젊은 사람들이 쿨하게 섹스를 하고 같이 즐겼으면, 그만이지 도대체 아무 조건도 맞지 않는 여자가 무슨 사랑을 운운하며 끝까지 달라붙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훈 주변에도 이런 스토리를 듣도 보고 못했던 이야기다.

옛날 영화나 조선시대 사극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픽션 아니고는 이런 여자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명훈은 지현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카톡이나 문자도 못하게 막았다. 그렇게 연락을 끊고 상대를 하지 않으면, 지현이 스스로 알아서 명훈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이도 지울 것으로 생각했다.

명훈은 이런 상황에서 지현의 전화를 차단하고, 새로 만난 제니와 깊은 관계에 빠졌다. 자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열심히 섹스를 했다. 두 사람은 가끔 이태원에 있는 단골 클럽에 가서 놀았다. 클럽의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명훈과 제니는 서로 약속했다. 모든 과거는 잊어버리고, 서로 두 사람만 만나자고 했다.

명훈은 제니를 자신의 부모에게 데리고 가서 같이 식사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집안의 환경이나 조건도 서로 맞는 것 같았다. 명훈은 제니에게 고급 명품도 선물을 했다.

구체적으로 속사정을 알게 되면 실망할 부분도 많이 있었고, 더군다나 명훈과 지현과의 관계 등 개인적인 사생활을 정확하게 알면 절대로 결혼이나 계속된 교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대부분은 비밀이었고, 굳이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할 고지의무도 없었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상을 보면 별것도 없는 것이었다. 명훈은 성적으로 무질서하고, 바람둥이고, 대학생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치나 하고, 낭비나 하고, 여자들과 섹스나 하고 돌아다니는 비인격자였다.

제니 역시 수많은 남자와 섹스를 하고 돌아다니는 불성실한 여자였다. 그리고 양쪽 부모 역시 파탄이 난 상태로 가정은 화목하지 않고 불화만 가득 찬 상태였다. 오직 돈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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