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거부한다>
너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사랑의 변질은 아니다
오래 동안 익숙해진 관계에서
질식하는 것은
너 때문은 아니다
너는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사랑에서 어긋나있다
사랑이 내 마음을 잡지 못하면
나도 사랑을 잡지 못한다
그 해 겨울은 차가웠다
갈라진 동토에서
사랑의 파편들이 짓밢히고
어두움 앞에 떨고 있는 군상들은
방황의 의미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도 상처받은 사랑은 봉합된다
아픔은 무관심과 반비례한다
슬픔은 관심과 정비례한다
그렇게 겨울을 보낸다
우리 사랑이 외로움을 떨쳐냈을까
삶의 붉은 의미를 전달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관대했다
타락한 영혼을 감싸고 있었을 뿐
비난하지도 않았고
감싸주지도 못했다
모닥불이 꺼져간다
뜨거운 열정이 청춘을 짓누른다
성적 에너지가 고갈되어야
진실한 사랑이 뿌리를 내릴까?
게울의 불꽃 축제가 막을 내린다
모두 자리를 떠난 빈 공간에서
우리는 밤을 새워 기억하여야 한다
공허함 속에서 공허함을 채워야 한다
삶은 공허해도 사랑은 공허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다
수은등마저 꺼졌다
칠흙의 시간에 영혼의 빛만 반짝인다
사랑은 양의 문제가 아니고
오직 내면의 질적 문제라고
그리하여 삶이 사랑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