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82)

2선을 한 현재 시장인 경목월 시장이 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탈락되자, 선거판은 사상 최대로 뜨거워졌다. 시청 국장을 역임한 백상무 후보와 오래 전부터 시장을 노리던 정국영 후보, 두 사람과 맹공희 대학 교수가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김민첩 사장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정국영 후보를 돕고 있었다. 정 후보는 김 사장의 실력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상대 라이벌인 백상무 후보와 맹공희 후보의 약점을 알아내고, 비밀공작을 통해 상대 후보들의 선거법위반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도록 부탁했다.

만일 김민첩 사장이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해서 정국영 후보가 당선되면,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이런 약속은 서면으로 작성하고 공증까지 할 성질은 아니었다.

대부분 불법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그야말로 상호 간에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지켜져야 한다.

김민첩 사장은 직원들을 불러놓고 지시를 했다. “우리 회사는 이번 시장 선거에서 여당 공천과정에서 정국영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다. 따라서 라이벌인 백상무 후보와 맹공희 후보의 뒷조사를 개시해서 그들의 비리와 약점, 잘못을 샅샅히 파헤치기로 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서 상대 후보 진영에 침투시켜, 상대 후보나 그들의 선거운동원으로부터 돈을 받거나 향응을 받은 다음 증거를 확보하여 이를 정국영 후보 진영에 넘겨주기로 한다. 알았나? 각자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정국영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 만일 이러한 공작이 노출되면 정국영 후보도 끝이고, 우리 회사도 문을 닫아야 한다. 알았지?”

이들은 마치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첩보작전, 공작활동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비장한 표정으로 작전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리에 행해져야 하고,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했다가 무덤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공칠은 고민에 빠졌다. 우선 자신은 세 후보 중에서 오직 백상무만 알고 있다. 다른 후보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칠은 우연히 백상무의 과거 비밀을 알고 있다. 그것도 오직 공칠이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 비밀을 지금 회사를 위해서, 아니 김민첩 사장을 위해서, 상대 후보진영에 넘겨야 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 물론 공칠이 이런 비밀을 김민첩 사장에게 누설하지 않으면 끝이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정보를 알아내면 그만이다. 고민은 깊어졌다. 공칠은 일단 백상무를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백후보님! 지금 판세가 어떻습니까? 당선될 가능성이 높습니까?”
“글쎄요. 맹공희 교수는 별거 아닌데, 정국영 후보가 만만치 않아요. 돈도 많고, 지역에서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예요.”

“정국영 후보의 약점이나 문제는 없나요?”
“지금 우리 진영에서도 정 후보의 뒷조사를 하고 있고, 조직을 동원해서 그에 관한 제보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워낙 약은 사람이라 어떨까 싶어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정 후보의 비리나 약점을 찾아볼까요?”
“어떻게요? 그런 방법이 있나요?”
“예. 후보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알아볼게요.”

이렇게 해서 공칠은 자신의 사장인 김민첩의 지시와는 정반대로 정국영 후보의 뒷조사를 혼자 시작했다. 그리고 김민첩에게는 확인되지 않고,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막연한 소문만 주어듣고 서면으로 첩보를 수집한 것처럼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그때마다 김민첩은 회의를 하면서 짜증을 냈다. “김공칠 실장이 수집한 자료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공지의 내용 아닌가? 도대체 이런 식으로 정보수집을 못하면 안 되는 거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빨리 목숨을 걸고 열심히 백상무의 뒤를 캐봐. 분명 여자관계가 있을 거야. 젊은 연예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그리고 시청에서 국장을 하면서 건설회사와 유착되어 뇌물을 많이 먹었다는 것 같아. 부동산투기도 많이 했는데, 다른 사람 이름으로 했대. 알았지!”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상무는 핸드폰도 차명으로 쓰면서 수시로 바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대학교를 나와서 머리도 비상하고, 아주 치밀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하지만 열심히 해서 곧 좋은 성과를 낼게요.”

“이번에 꼭 성공해야 해. 우리 회사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야. 알았지!”
공칠은 이번 선거에서 김민첩 사장이 왜 저렇게 열심히 정국영 후보를 도와주려고 난리를 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굉장히 중요한 이권이 달려있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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