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9)

다음 날 공칠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그 남자는 공칠에게 어제 있었던 일은 비밀로 붙여 달라고 하면서 돈을 주려고 했다. 공칠은 감각적으로 그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시청 국장이었다.

“미안하네, 젊은 이! 어제는 내가 실수했네. 이해해 주고, 이건 내 성의니까 받아뒤요.”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장소가 워낙 으슥한 곳이어서, 가끔 성폭행도 일어나고 해서, 제가 자진해서 위기에 처한 여자들을 구해주기 위해 하는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여자분은 사모님이신가요?”

“응. 맞아요. 우리 집사람이예요. 모처럼 같이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데이트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아 그래요. 미인이시던데요. 그리고 선생님과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어디선가 많이 익은 얼굴이예요. 혹시 연예인 아닌가요?”
“응. 왕년에 대학 다닐 때 축제 때 미스 OO대학 메이퀸으로 뽑힌 적도 있어요. 그런 말 들으니까 멋쩍구먼. 하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것도 좋은 인연인데,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도록 해요. 내가 밥도 살테니까...”

이렇게 헤어졌다. 이번 일은 공칠로서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공칠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은 직감이 들어서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공칠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후 1년쯤 지나서 그 지역 시장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공칠이 만났던 그 사람이 시장 후보로 출마한 것이 아닌가?

마침 공칠이 모시고 일을 하는 김민첩 사장은 반대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평소에 반대 후보와 김민첩 사장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 후보 정국영의 부인으로부터 김민첩 사장이 남편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받은 일이 있었다. 김 사장은 이년 전에 이런 뒷조사를 해서 정국영이 젊은 여자 애인에게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준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정국영의 부인에게 전해주면 성공보수로 500만원 더 받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민첩은 워낙 약은 사람이었다. 그 수집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정국영에게 가서 협상을 했다.

“이 자료를 당신에게 줄 테니, 2천만원을 달라. 그러면 당신 부인에게는 증거를 못찾은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겠다.”
이렇게 협상을 해서 김 사장은 정국영에 대해 수집한 자료를 부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모두 정국영에게 주었다. 그 대가로 천5백만원을 받았다.

그런 다음부터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이 술도 마시러 다녔고, 각자의 애인을 대동하고 같이 여행도 다녔다. 서로의 비밀을 지켜줄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바람 피는 취향도 비슷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이 바람을 피워도, 가까운 학교 동창과는 피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마음 놓고 같이 바람을 피러 다니는 것이다. 골프를 같이 치러가기도 하고, 해외여행도 이렇게 팀을 짜는 것이다.

공칠은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시장 선거에서 후보로 나온 그 사람을 찾아가서 만났다. 백상무 후보는 깜짝 놀랐다.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공칠이 찾아오니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어쩐 일이요? 그동안 잘 지냈소?”
“예. 저는 원래 하던대로 지역 환경정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장선거에 나오셨다면서요?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하하. 없어요.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당선되면 한번 만나요. 같이 지역발전을 위해 상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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