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7)

어느 작은 도시에 최공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칠이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자 정육식당을 차렸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공칠이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믿는 불교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정육점을 오래 하고 계신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종교적 교리고, 우리가 먹고 사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 정육점은 생업일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직접 도축을 하는 건 아니잖니?”

공칠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힘이 센 친구들로부터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집에 돈도 있었기 때문에 일진회에서는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칠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일진회에 가입하면 공부도 못하게 되고, 모범생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일진회 멤버 5명이 공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공칠이는 그 다음부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태권도와 권투를 배웠다.

그리고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원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한계가 있어 그랬는지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은 포기하고 아버지 정육점이나 이어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공칠은 서울로 올라가서 대입학원에 등록을 했다. 1년 동안 재수를 한 다음, 마침내 공부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경찰관이 되려고 했던 꿈은 끝내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제일 활발하게 흥신소를 하고 있는 김민첩 사장을 찾아가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김민첩 사장은 이름 그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행동이 빨랐다. 과거 경력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부하 직원들은 모두 공수부대나 해병대 출신만 뽑았다. 김 사장은 전화도청기술도 가지고 있었고, 핸드폰을 복제하는 기술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김 사장은 또한 경찰공무원이나 시청공무원들과도 긴밀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무원들을 접대하는 고급 술집에서 한달에 절반은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인물도 왠만한 탤런트 같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김 사장은 부인과는 별거를 하면서 수시로 애인을 바꾸면서 생활했다. 주로 그 지역에서 돈이 많은 여자들이 김 사장에게 목을 매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이 타고 다니는 외제차는 마치 김 사장의 것처럼 보여졌다. 김 사장의 사생활은 엉망이었지만, 그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대단했다.

김 사장은 평소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했지만, 몸에 좋다는 뱀탕을 즐겨먹었다. 이런 베테랑 사장 밑에서 열심히 일을 배운 결과 공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흥신소에서 정식으로 맡아서 처리하는 업무 이외에 공칠은 혼자서 독자적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지역에서 행세하는 사람들의 뒷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79)  (0) 2021.02.03
작은 운명 (78)  (0) 2021.02.03
작은 운명 (70)  (0) 2021.01.30
작은 운명 (71)  (0) 2021.01.29
작은 운명 (20)  (0) 2021.0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