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0)

명훈 엄마는 요새 아주 죽을 맛이다. 몸무게도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그동안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수없이 시도를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에 명훈이 임신문제로 골치를 썪고있는데, 갑자기 명훈 아빠 회사에 대해 검찰의 특별수사가 시작되었다. 잘못하면 회사가 부도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고 명훈 엄마가 운영하는 약국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고 방심했다가는 인근 경쟁약국에서 손님을 다빼앗갈 상황이었다. 밤에 잠도 잘 못잤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심해서 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잠에 들지 못했다. 너무 약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때로는 술을 마셨다.

오늘도 밤 11시경 술을 마시고, 겨우 눈을 붙이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혹시 검찰청 아닌가 싶어 떨리는 가슴으로 받았다. 목소리가 매우 날카로운 중년의 여성이었다.

“여보세요 명훈씨 어머니 되세요. 저는 아드님에게 강간 당한 여자의 친구되는 사람인데요. 며칠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합의를 하지 않고 있는 거지요? 명훈씨가 부모님께 말씀드려 곧 합의한다고 그랬는데요.”
“뭐라고요? 강간이라고요? 우리 아들이 강간을 했다고요? 무슨 말이예요?”
“이상하네요. 아드님이 말 않든가요?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요. 빨리 배상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고소장을 낼 겁니다. 아드님과 상의하고 연락주세요. 제 번호는 지금 찍혀있지요?”

명훈 엄마는 하마터면 쓰러져 뇌출혈이 일어날 뻔했다. ‘강간이라니! 명훈이가 강간을 했다니? 명훈아! 이 불쌍한 인간아! 너도 사람이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명훈 엄마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급히 명훈을 찾았다. 명훈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명훈 엄마는 절망했다. 엎친데 겹친다고 했다. 세상에 좋지 않은 일은 언제나 동시에 들이닥친다. 좋은 일은 멀리 간격을 떨어뜨리며 오지만, 나쁜 일은 함께 몰아닥친다.

이것을 雪上加霜(설상가상)이라고 한다. 눈도 내리고 서리도 얼어서 더욱 춥게 만든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misfortune on top of misfortune’ ‘to make matters worse’ ‘as if to rub salt in the wound’라고 한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명훈 엄마는 명훈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너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43살이나 처먹은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이태원 클럽에 가서 24살 된 어린 아이와 같이 모텔에 갈 수 있냐? 처음부터 계획적인 꽃뱀이 틀림 없어. 그리고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냥 가면 되지 친구를 불러서 때리고 강압적으로 각서를 받는 건 정말 악질이야. 근데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명훈 엄마는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까지 아빠와 상의할 처지가 아니라서 혼자 해결하려고 개인적으로 아는 여자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아이가 꽃뱀에 물렸어요.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 꽃뱀에 물리면 큰 일 난다. 꽃뱀은 겉모습을 화려하지만, 그 속에 아주 강한 독을 품고 있다. 일단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다.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도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여자가 꽃뱀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 여자는 순수한 성범죄 피해자일 수 있다.

꽃뱀인지, 피해여성인지는 법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가해자의 부모가 판단할 권한은 없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모든 책임은 명훈에게 있는 것이지, 명훈이 돈 10만원을 주며서 술에 취한 자신을 부추겨 모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는 요구를, 함께 술을 마신 일행으로서 거절하지 못하고 데려다 주었다가 순간적으로 당한 경우에, 그 여자가 갑자기 꽃뱀으로 돌변했다고 보기는 너무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명훈 엄마는 피해자의 나이와 가해자의 나이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그리고 43살이나 되는 가정 주부가 술집에서 만난 24살 되는 대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여자를 꽃뱀, 아들은 선의의 피해자로 단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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