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1)
“큰일 났네요. 빨리 합의해야 해요. 고소를 하면 구속될 수도 있고,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어 골치 아파요.”
여자 변호사는 수없이 이런 사건을 겪어봐서 그런지 숨도 쉬지 않고 진단을 내렸다. 의사 같으면 청진기라도 대보고, 소견을 말할 텐데, 여자 변호사는 범인도 만나보지 않고, 그냥 범인의 어머니 말만 잠깐 듣더니 성범죄자로 단정짓고,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도 될 수 있다는 확진을 내린 것이다.
“우리 아이는 술에 취해 어떻게 모텔에 갔는지도 모른다고 해요. 폭력을 행사한 것도 없고요. 실제 관계도 하지 못했대요. 그런데 이 여자가 밖으로 끌고 나와서 친구와 함께 억압으로 강요해서 사실확인서를 써주고 왔대요. 그 사실학인서는 부르는대로 썼는데 지금 그 여자가 가지고 가서 아이는 어떤 내용을 썼는지 잘 기억도 못해요.”
“억울하지만, 일단 시인하는 각서를 써주었고, 모텔에서 성교를 시도했다면 성폭력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요. 술 취했다는 변명도 별로 참작이 안 돼요. 대개 강간이란 술마시고 하는 거니까요.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린 다음, 삽입을 시도했다면 강간죄의 기수(旣遂)가 되는 거예요. 강간죄에 있어서는 삽입이 되면 기수가 되는 것인데, 여자가 이미 들어왔다고 우기면 무조건 인정하고 말아요. 그것이 안 들어갔다고 CCTV를 찍어놓지는 않았을 거 아니예요? 그리고 설사 삽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도, 그때는 기수가 아니고 미수범(未遂犯)으로 인정되지만, 우리 형법상 강간죄는 기수범이나 미수범이나 거의 똑 같은 처벌을 하고 있어요.”
“정말 이상하네요. 여자 OO에 남자 OO가 들어가지도 않고 닿기만 해도 강간으로 본다는 게. 그리고 그런 경우 여자에게 무슨 피해가 있는 거예요? 상처가 나지도 않고, 그냥 물로 씻으면 끝나는 건데. 그 여자는 43살이나 먹었고, 애까지 낳았는데, 어린 남자 것이 거기 좀 닿았다고 해서 무슨 피해가 있고, 그걸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아무튼 빨리 합의하세요. 합의하지 않고 고소를 당하면 징역을 가든, 집행유예를 받든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고, 보호관찰도 받고, 성폭력범죄인으로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어요. 인생 망치게 되요. 취직도 못하게 되요.”
“정말 억울해요.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43살 주부가 미쳤다고 클럽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남자와 모텔을 가요. 옛날 같으면 남편이 알까봐 지가 먼저 쉬쉬할 텐데. 세상이 말세예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법은 법이예요? 피해자가 고소하면 문제가 되는 거지요? 여자가 신고도 안하고 넘어가면 끝나는 거예요. 일단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얼마면 합의가 될까요?”
“글쎄요. 민사와 달라서 형사사건에 대한 합의금은 사실 일정한 기준이 없어요. 그 여자가 어디 다쳤다고 진단서까지 끊으면 강간상해죄, 강간치상죄가 되어 더 큰일 나요. 진단서가 없으면 일단 천만원 정도 선에서 이야기해보세요.”
“예? 천만원이나 되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뭘 피해 봤다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줘야 해요. 성매매를 하면 한번에 15만원 내지 20만원이라고 하던데, 텐프로 고급 룸살롱의 아가씨도 50만원이면 된다던데, 43살 먹어 늙어빠진 가정주부를 하지도 못하고 천만원이나 물어줘야 해요. 정말 법이 너무한 거 아네요?”
“글쎄요. 아무튼 현실에서 강간사건의 합의금은 그런 거예요.” 변호사는 명훈 엄마를 잘 알고 지내고 있지만, 이번에 말하는 것으로 보아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성범죄가 얼마나 무겁게 처벌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답답하다. 자기 아들만 생각하고, 피해를 당한 여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야. 빨리 합의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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