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84)

한편 백상무 후보에 대해서는 시청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뇌물을 먹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지역에서 오피스텔 허가를 내주면서 업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친척의 이름으로 오피스텔 한 채를 공짜로 분양받았다는 소문이 났다.

이런 소문을 근거로 김민첩 사장은 공칠에게 이 사건을 신속하게 조사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김민첩 사장은 공칠에게 이 사건 조사용역비로 500만원을 개인적으로 주었다.

공칠은 지시에 따라 백상무 후보가 관여하였다는 오피스텔에 대한 심층조사에 들어갔다. 공칠은 경찰도 아니고, 감사원 공무원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무슨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조사해 들어갔다.

그러면서 지역 신문 기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기자들도 아주 좋아했다. 뜨거운 선거판에 유력한 후보의 뒷조사를 한다고 하니, 특종 욕심에 들떠있었다.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공칠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공칠은 이러한 증거를 곧바로 김민첩 사장에게 가져다주지 않고, 먼저 백상무 후보를 만났다.

“제가 이번에 이러 이러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태양오피스텔사업과 관련해서 국장님으로 재직할 당시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피스텔 한 채를 후보님 친척 명의로 공짜로 받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자료를 정국영 후보에게 주어야 할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백상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도 무척 괴롭습니다. 차라리 선거를 포기하는 것이 좋이 않을까요?”

“최 선생! 우리 이렇게 합시다. 지금 선생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모두 말밖에 없는 겁니다. 물적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이런 문제가 터지면 큰일입니다. 내가 당선되면 선생의 은혜를 잊지 않고, 4년 동안 챙겨줄 테니 모든 걸 덮어주세요. 그리고 이 자료는 저를 주시면 어떨까요?”

“예. 알았습니다. 후보님. 저도 후보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를 위해서도 후보님이 당선되었으면 합니다. 상대 정국영 후보는 워낙 지저분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칠은 이렇게 타협을 보고, 김민첩 사장에게는 껍데기 자료만 가져다 주고, 이 정도 자료만 가지고 문제를 삼았다가는 거꾸로 백상무 후보측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김민첩 사장은 크게 실망했지만, 하는 수 없다고 단념했다.

지역에서는 정국영 후보와 백상무 후보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루머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번 선거에서만은 me too 운동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서는 크게 미치지 않아서인지 두 사람의 여자문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보통은 후보로 나온 사람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진 여자들이 들고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두 사람 모두 여자를 잘 다루었거나 관리를 잘 했거나, 적어도 이용해먹고 나몰라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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