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ROTC 출신 가짜 대위가 1년 만에 대위계급장을 달았다

 

미경에게 강 교수는 그야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적인 존재였다. 행동도 모범적이고, 아무런 흠이 없었다. 잠자리에서도 상대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면서, 분위기 있게 필요한 범위에서만 성행위를 하고, 일이 끝나면 말끔하게 뒤처리도 하는 남자였다.

 

미경은 대학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생도 아닌 교수님이라니, 그런 하늘 같은 존재인 교수님과 단둘이 사적으로 만나서 와인을 마시는 영광을 얻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미경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하고 곧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을 마치고 취직했다. 미용실 일은 힘들었다. 보조로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조금만 잘못했도 원장으로부터 눈물이 날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손님 머리를 잘못 잘라서 쫓겨날 뻔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머리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은 여자 손님은 자기 목이 잘린 것보다 더 화를 내고, 단골을 끊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멋을 부리고 미팅을 하고 있는데, 미용실 보조로 일하고 있으니 창피했다. 가끔 아는 친구들이 미경이 일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오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그 친구가 갈 때까지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특히 같이 온 남자 친구가 두꺼운 대학교 교재를 몇 권 들고 와서 미용실에서 기다리면서 젊잖게 안경을 쓰고,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속이 상해 미칠 정도였다. 원래 공부 못하는 학생이 두꺼운 책을 폼으로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미경은 알지 못했다. 어떤 대학생은 옛날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커버를 씌워서 대학교 교재인 것처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장은 이런 미경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미경이 필요한 입장이어서 그런 것을 문제삼아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중, 미경은 말하자면 미경이 대학교 3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남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은 다니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매년 한 학년씩 올라가면 미경도 그에 따라 마음 속으로 학년이 올라갔다.

 

미경은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ROTC라는 제도가 있었을 때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이 서울의 어느 대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면서 사기를 치고 있었다. 청년은 그 대학교 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미모의 여자들을 꼬셔서 돈을 뜯어내고 몸을 농락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대학교 앞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남학생들이 ROTC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자세하게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대학교를 다니면서 ROTC 훈련을 받으면, 졸업하면서 군대에 소위로 들어가서 장교로 복무를 하고 제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군사훈련을 받으니 몸 자세도 꼿꼿하고 걷는 것도 제식훈련을 해서 남자답고 멋이 있어보였다. 그러다보니 같이 가는 여자들도 키도 크고, 예쁘고, 집안도 있어보였다.

 

그래서 청년은 ROTC 옷을 남대문시장에 가서 구했다. 그리고 매일 ROTC 복장을 하고 여자들을 만날 때, 자신도 ROTC를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졸업하면 군대에 소위로 근무할 것이라고 자랑을 했다.

 

하숙방에는 모의권총이나 군인들이 쓰는 철모, 군사지도, 나침반, 단검 등을 구해놓았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중고책도 사서 읽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책을 많이 보았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여자들은 청년의 말에 속아서 청년에게 돈도 꾸어주고, 같이 잠자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청년은 소정의 기한이 차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고, 군대에 들어가 소위가 되어야 하는 계산법이 나왔다.

 

그래서 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대문에 가서 장교 복장을 사서 입고 다녔다. 계급장은 소위로 달았다. 그런데 그 청년은 군대를 전혀 모르니까,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려면 일정한 근무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6개월 단위로 자신의 계급을 올렸다. 6개월마다 소위에서 중위로 올라가고, 다시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을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가상으로 졸업한 후 1년이 지나자 그 청년은 현역 장교복장을 하고, 대위 계급장을 달고 다녔다.

 

물론 여자들은 모두 그 청년이 군대에 들어가서 대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청년은 서울에서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하고 있어서 하숙집을 옮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청년은 고향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청년의 옆좌석에 실제 현역 병장이 탔다. 가짜 대위인 그 청년은 진짜 병장에게 반말로 말을 걸었다. 진짜 병장의 성은 진씨였다.

 

“어. 진 병장, 어디 가는 거야?” “예. 대전에 가는 길입니다.” “응. 그래. 요새 군대생활 힘들지 않아?” “좀 힘듭니다. 그래도 이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괜찮습니다.”

 

병장은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현역 대위가 자꾸 말을 걸어오니 피곤했다. 그래서 병장은 영등포역에서 내렸다가 바로 다른 칸으로 옮겨서 가짜 대위와 헤어지려고 했다. 그랬더니 가짜 대위는 화를 냈다.

 

“이 자식이 어디서 내려? 너 대위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이렇게 까부는 거야? 혼좀 나볼래.” 그러면서 가짜 대위는 진짜 병장의 멱살을 잡았다.

 

“왜 이러십니까? 이거 놓으십시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너 임마, 대위한테 대들어? 너 진짜 병장 맞아? 가라로 계급장 단 거 아냐? 너 같은 놈이 병장까지 올라갈 수는 없어.”

 

가짜 대위는 진짜 병장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몇 대 때렸다. 힘이 센 병장은 곧 가짜 대위의 손을 꼭 잡고 제압을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철도청 공안을 불러 가짜 대위와 진짜 병장은 다음 역에서 내렸다.

 

폭행사건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가짜 대위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청년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자들로부터 사기를 치고 성관계를 맺고, 돈을 뜯어냈다는 사실로 조사를 받았지만, 피해자인 여자들이 모두 경찰에 출석을 거부하고, 피해를 본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그 청년은 가볍게 처벌받고 나왔다.

 

민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그 사건이 종결되자 다시 여자들을 만나서 자신은 군대 헌병대에서 억울한 조사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여자들이 궁금해하자, 같이 근무하는 남자 소령이 자신과 동성애를 하자고 하여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자신을 워커발로 차서 자신이 그 남자 소령의 급소를 차서 상관폭행죄로 영창에 일주일 가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 청년은 대위에서 멈추고, 더 이상 소령으로 진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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