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00)

한편 강교수 부인인 민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희 역시 공부는 아주 싫어했다. 그러다가 머리 좋은 강교수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강교수는 집안이 어려웠고, 민희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민희는 물론 결혼 전에 여러 차례 연애를 했고, 남자들과 성관계도 가졌지만, 강교수를 만나 결혼한 이후에는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고, 오직 강교수에게만 순정을 바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강교수는 결혼한 직후부터 서시히 민희가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고 핀잔을 주었다. 민희 부모가 대준 돈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도 강교수는 늘 민희가 지적이지 못한 점을 언급했다.

강교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 TV는 거의 보지 않았다. 강교수는 영어 좀 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미국 방송 CNN이나 BBC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그러면 민희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 방송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 그러면 강교수는 민희가 유치하다고 짜증을 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가면서 민희는 자신은 강교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맞지 않는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되면, 그건 더 큰 불행이 될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민희는 강교수와 각방을 썼다. 처음에는 아주 이상했다.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말을 들어봤지만,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한 두달 지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남편과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의 냄새도 싫었고, 코고는 소리도 싫었다. 특히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는 때에는 마치 돼지가 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돼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싫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민희는 강교수가 자신과는 관계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쓰면서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처음에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 여자를 만나서 박살을 내려고도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강교수가 그짓을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포기했다.

민희는 그래서 다시 옛날 처녀시절 연애하던 남자들의 낭만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작한 산악회 동호회에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너무 지성적이지 않은 남자, 너무 잘난 척 하지 않는 남자, 너무 똑똑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만나게 되니, 육체관계는 특별한 의미 없이 이어지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민희는 자신이 바람을 피는 것에 대해 만약에 강교수가 문제 삼으면 혼자서만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강교수의 뒷조사를 해서 이미 강교수의 불륜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 놓았다. 그래서 맞불 작전을 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두 사람은 아주 냉냉해졌다.

민희는 강교수를 볼 때마다, 다른 여자와 껴안고 뒹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완전히 동물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은 배꼽 이하는 동물과 똑 같다. 만일 증명사진을 얼굴만 나오는 상반신이 아닌, 하체만 나오는 하반신으로 찍어서 제출하면 실제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사진과 대조해서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민희 역시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실존의 방황’일 뿐, 그렇게 더럽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교수의 외도는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이며, 완전히 동물적인 ‘추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이혼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