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9)
통영은 바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사기꾼들은 매우 신중하다. 신라호텔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끔 만든 여자에게 한 보름쯤 있다가 전화를 한다.
그것도 여자의 심리를 잘 연구해서, 가정주부인 여자가 남편이 출근한 다음, 특히 월요일 오후 3시경 전화를 한다. 심심하던 차에 여자는 전화를 받고 반갑게 응대한다.
“호텔을 이제 본격적으로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달러값이 떨어지기 전에 돈을 들여와야 해요. 언제 시간이 되시면 신라호텔에서 커피나 한 잔 하면 어떨까요?” 여자는 이미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오케이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자는 자신의 외제차로 운전을 해서 통영을 모시고 양수리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고급 호텔을 지을 자리를 찾는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는 일체 비밀이다. 1급 군사비밀이고, 특명작전이다.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업계획을 말하면 큰일 나요. 비밀이 새면 조폭들이 저를 납치해서 살해할지 몰라요. 미국에서 아버지가 수시로 저에게 주의를 하라고 연락이 와요. 한국에는 조직폭력배가 많아서, 만일 재미교포가 한국에 큰 돈을 투자하러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고, 미국 아버지 회사에 연락해서 10억원 정도는 뜯어낸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기꾼들이 많아서 저를 이용해서 바가지 씌우려는 복덕방도 조심하라는 거예요. 오직 사모님만 알고 계세요. 그래서 저는 이름도 가명을 쓰고 있어요. 지금은 제임스 박이지만, 수시로 이름을 바꿀 것이니 놀라지 마세요. 제 핸드폰도 한달에 한번씩은 번호를 바꾸고 있어요. 물론 지금 쓰는 것은 렌트한 거예요. 미국에서는 큰 사업을 하려면 비밀유지가 가장 중요하고, 신변보호가 최우선이예요.”
여자는 들을수록 통영이 큰사람으로 보였다. ‘아 사업은 저렇게 하는구나! 역시 미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매우 치밀하고 빈틈없이 하는구나!’
비밀을 지켜야 하고, 주변에서 달라드는 사기꾼이나 조폭들도 따돌려야 한다는 통영의 말에 공감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같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양수리 같은 경치 좋은 곳을 남녀가 다니다 보면, 여자는 통영의 숨은 계획에 말려들어간다. 자연스럽게 양수리나 서종면에 있는 북한강이 보이는 모텔에 들어가 정사를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통영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여자에게 애로사항을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일단 10억원을 보낸다는데, 그것을 한국에서 찾으려면 외국환거래법 문제가 있어 경비가 필요하대요. 그런데 지금 나는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아 큰일이예요. 잠시 빌려주면 미국에서 돈이 들어오는 대로 갚을게요. 한 300만원만 빌려주세요. 일주일이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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