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0)

여자는 한동안 망설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겪었던 통영의 사회적 지위나 아버지의 재력, 한국에서의 사업계획 등을 모두 알고 있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돈을 만들어준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잘 봐요.”
여자는 통영이 그동안 자신에게 한국 호텔사업이 제대로 되면 여자에게도 객실 하나는 전용으로 공짜로 쓰도록 하겠다는 구두 약속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고 있어 미국에서 돈을 받는데 필요한 경비 정도는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는 스스로 핑크빛 환상에 젖는다.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은 미국 준재벌의 아들을 만나, 북한강변에 크게 세워질 스코틀랜드 풍의 고급 관광호텔에서 가장 높은 층의 스위트룸 객실을 평생 무상으로, 그것도 전용으로 쓰게 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돈을 빌려 간 다음에는 통영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연락이 뜸해졌다. 통영은 또 다른 호텔로 옮겨가서 다른 여자에게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홍콩이나 일본에 비즈니스 때문에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 보름씩 연락이 끊어지기도 했다. 이런 수법으로 통영은 수십명의 여자를 농락했다. 사기금액은 대체로 한 사람으로부터 몇백만원 내지 몇천만원까지였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사기를 치는 기술이 늘고, 경험이 풍부해지자, 때로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렌트카를 운전시키기도 하고, 사기의 공범으로 끌고들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사기피해자들은 대부분 통영을 고소하지 못했다. 유부녀로서 통영과 정을 통했으므로 만일 남편이 알게 되면 돈을 찾으려다 집에서 쫓겨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어떤 여자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통영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 여자는 이미 이혼한 여자였기 때문에 고소하는데 아무런 장애요인이 없었다. 그 여자는 불과 500만원만 사기 당한 상태에서 처음에는 고소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여자는 혼자 살면서 통영과 연애를 하면서 통영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통영과의 잠자리에서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들과 양수리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자신이 통영과 다니던 모텔에서 통영이 다른 여자의 외제차를 타고 나오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돌아서 통영을 만나 따졌고, 그 길로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는 통영도 너무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그 모텔에 갔던 것일까? 그렇잖아도 그 모텔은 너무 많이 다녀서 싫증이 났던 것인데, 새로운 파트너가 그 모텔이 전망이 좋다고 우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끌려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통영은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고소를 한 사람만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피해자들은 유부녀가 대부분이어서 고소를 하지 못했다.

유부녀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여자들의 신분이 대학 교수 또는 공무원, 대기업 직원인 경우도 있어 그들은 사회적 체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돈을 손해보고 말았다. 재수가 없어 사기꾼을 만나, 몇 번 연애를 하고 그 대가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소리  (0) 2021.02.25
그날 유난히 허전했다  (0) 2021.02.25
작은 운명 (9)  (0) 2021.02.25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0) 2021.02.25
한국인의 사랑  (0) 2021.02.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