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3]

 

 

 

5. 고난과 성숙 

 

졸업반이 되자 마음은 조급해졌고 군대문제 대학원문제가 화급한 과제로 던져졌다. 삼양동에서 신림동까지 통학을 하느라 애를 먹었고, 또 다시 어수선했던 집안 분위기는 도대체 책을 붙잡고 있게 하질 않았따.

 

공부할 장소도 적당하지 않고 해서 빈둥 빈둥하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고 무기력감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천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 때 느끼던 착잡한 심정은 지금도 또렷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가 덩어리진 채로 던져진 것이었다.

 

그러던 중 8춸초 집 근처에 있는 혜명고시원(구 아이템플고시원 - 미아리 삼거리 소재)에 등록을 했다. 에어콘까지 설치되어 있는 깨끗한 신축건물이라 공부하기에 최적한 곳이었다. 

 

이 곳에서 만난 고교선배인 채규옥 씨와 서울대 출신의 설동균 씨와 함께 trio를 구성하여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잊은 채 자료를 정리하고 서로 문제를 출제하여 실전에 대비한 훈련도 하였다. 그러면서 또 다시 총 174매에 달하는 방대한 논문 '불법행위법체계의 신형상과 소송상 입증책임문제'에 착수 약 2개월에 걸쳐 이를 완성 'FIDES'에 게재 발표하기도 했다.

 

같이 졸없축제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던 모 여학생이 돌연 계약해지를 통고하여 쓸쓸히 도서관의 trio로써 외곽만 걷돌았고, 남들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 같은 것들이 공부에 시달리는나에게 매우 자극적인 것이었떤 당시였지만 18회 사시에의 도전은 끈질긴 것이었다고 회상되어진다.

 

12월초 한양대학교 대학원 입시가 있었다. 많은 대학동기들이 상호경쟁한 기이한 시험이었으며, 불합격할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예상외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눈이 하얗게 온 천지를 덫은 날 마지막 졸업시험을 치루고 관악캠퍼스를 내려 오면서 나의 진로, 인생을 깊이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우선은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사념이 몸 전체를 감싸도는 것이었다.

 

한양대학원에 들어간 대학 동기 몇 명이 그룹을 형성 합천 해인사 길상암에 도착한 것은 12월 20일 경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산사생활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고, 휘몰아쳐 오는 산곡의 강풍, 캄캄한 새벽에 하는 식사, 얼음장을 깨서 하는 세면 등 많은 고시생들이 으례히 하는 일이건만, 이러한 생활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역경이었다.

 

18회 1차시험의 부담은 제대로 2차 시험을 보려는 나에게 몹시 신경을 쓰게했으나 그런대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단체생활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산사생활에 익숙해지려고 할 때에 우리는 또 다시 장소를 옮겨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주지스님과의 마찰로 인해 우리는 대구에서 1차시험을 치른 뒤 서울 근교의 퇴계원에 있는 한대 기숙사에 들어가야먄 했다.

 

낯선 분위기 속에서 이를 악물고 책과 싸웠다. 영철군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열심히 책을 보는 동안 어느 정도 시험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퇴계원의 들판에 서서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 속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묘한 착각을 일으켰고 그 때 느꼈던 고독감은 정말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다.

 

밤에 기름난로에 끓여먹던 라면은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고, 하루 2개씩 먹던 날계란은 매우 고소하였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만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집념은 잠이 들지도 못하게 하였고 추운 줄도 모르게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차 수석을 기대하고 있었던 내가 1차 합격자의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그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식구들이 격려는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다.

 

한번도 2차시험을 치뤄 보지도 못한 채 졸업장을 받아 들고 나는 실업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하 연재가 계속됩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밤의 명상시간  (0) 2005.06.21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4]  (0) 2005.06.21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2]  (0) 2005.06.20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1]  (0) 2005.06.20
북한산 바위를 흔들면서  (0) 2005.06.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