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1]

 

 

 

*** 이 글은 가을사랑이 1977년 사법시험 제19회에 합격하고, 1978년 2월 월간고시[사법시험준비 수험잡지/ 법지사 발간]에 게재했던 사법시험 합격기입니다.

 

 

 

1. 글의 첫머리에

 

돌이켜 고시합격의 노정을 생각해 보면 무수히 많은 선배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무엇인가 조금씩 사고하고 배워가며 방황하다 보니 우연히 합격의 고개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때묻은 고시복을 툭툭 털어 버리면서 한 해를 정리하려 하니 그 동안 시험을 전후한 많은 사연들과 함께 아쉬움과 미련히 불현듯 몸 전체를 휘감아 돈다.

 

지극히 평범한 과정이었고 자신이 처해 있었던 환경이 예외가 아니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역시 고시라는 거울에 비추어질 때에는 인내로써 극복된 고통이 걸어 온 발자취마다 점점이 새겨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 한 번쯤 반추해 보고 싶었던 지난 몇년 동안의 생활을 사고와 행동, 그리고 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간단히 적어 보기로 한다.

 

2. 낭만과 방황

 

마른 체격과 허약한 체질에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수척해진 상태에서 서울법대에 입학한 것은 1972년 봄이었다.

 

동숭동 교정에서 시작된 대학생활은 꿈과 낭만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입생이 겪는 경험이겠지만 술 담배 미팅 등으로 인한 생활의 방만은 나로 하여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했고, 하고 싶은 많은 유익한 일들이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은 자신에 대한 회의를 파도처럼 몰고 왔다.

 

민법총칙과 형법총론을 소지하고 마치 대단한 법학이나 연구하는 것으로 착각했고, 미구에 위대한 법학자가 될 것은 필지의 사실로 오인하고 있었다.

 

법서를 한 두권 들고 거리를 육신이, 삭막한 황야를 정신이 방황하며 낭만을 찾아 급급하고 있었던 이 무렵 고시란 실로 막연한 추상적인 개념이었을 뿐, 어떤 실감 있는 형상은 아니었다. 대학 초기부터 불가피하게 강요 되었던 과외지도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아 갔고 무거운 심리적 압박감을 가하고 있었다. 

 

결국 책을 차분히 보기에 부적합한 주위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막연히 무언인가 되겠지 하는 심리 속에서 보낸 대학 1학년 생활은 낭만적인 방황이었던 것으로 규정지어진다.

 

3. 회의와 성장

 

2학년이 되어도 생활은 여전하였다. 학교강의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때때로 있는 미팅과 술좌석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남는 시간은 피로를 풀기 위한 수면에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공부와 시험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심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나는 조용한 전진을 하고 있었다. 허약한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태권도반과 유도반에 가입하였고, 매일 아령과 Bench Press를 하였다. 몸이 눈에 띌만큼 나아졌고 이 때의 운동 덕분에 그 후 시험공부할 때에도 건강에는 과히 신경쓰지 않아도 좋았던 것이다.

 

2학년 가을 학원은 소요로 수업이 중단되었고, 10월 한달은 완전한 공백 속에서 많은 사고를 하면 보냈으며 그 가운데 겨울을 맞았다.

 

열정적으로 학구적이었던 신영철군(사법연수원 8기)과 16회 1차를 목표로 동숭동 거소에서 포진을 짰다. 둘이서 밤늦도록 책을 보고 상호문답의 형식으로 약 2개월간의 계획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사정변화가 생겨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1차 준비는 전면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3학생을 지도하면서 매일 집 뒤의 동산에 올라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관조하고, 관악 캠퍼스 신축현장을 거닐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회의하고, 그러면서 현실의 작은 문제들은 덮어 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복잡한 가정내의 문제로 며칠씩 고심하며 거의 절정에 다달았던 집안의 경제문제로 마음 아파하며, 목전의 시험은 단지 나를 괴롭히는 괴물에 불과하였을 뿐 이를 요리할 하등의 능력도 없었다.

 

부모님들의 절실한 기대에 할 수 없이 시험장에 가기로 하였지만 전날 포도주 한 병을 놓고 구성진 섹스폰 연주의 적과 흑의 블루스, Gloomy Sunday를 들으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발이 젖을새라 쓸어주는 식구들의 눈물겨운 정성 속에 치른 시럼이었나 역시 예상대로 낙방하고 말았다.    

 

[이하 다음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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