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바위를 흔들면서
토요일 오전 8시경 구기동에 도착해서 등산을 시작했다. 출발 전에 택시에서 내려보니 등산용구를 길에서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등산화가 2만원이다. 전에 동대문시장에서 샀던 등산화를 한 번 신었더니 조금 커서 그런지 내려올 때 발이 불편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등산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그냥 올라갈까 하다가 등산화를 보고 하나 샀다. 어떻게 동대문시장 보다 더 싸게 파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아저씨 하는 말, "나는 한 번에 싸게 많이 사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싸게 판다."
호텔 커피를 두 사람이 마시는 비용으로 몇 년을 신을 등산화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백화점에 가지 않고 편하게 등산로 입구에서 사서 즉석에서 운동화와 바꿔 신고 즉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신던 운동화는 아저씨에게 맡겨놓고 돌아갈 때 찾겠다고 했다. 쾌히 승낙을 받았다.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산오름을 시작했다.
최근에 등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등산은 참으로 좋은 레저고 스포츠다. 뿐만 아니라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건강에도 이처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잘은 못하지만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여간 감사한 게 아니다. 평지를 아무리 많이 걸어도 땀은 별로 나지 않는다. 미사리 경정장 뒤 뚝방길을 자주 걸어봐서 안다. 그런데 등산은 30분만 해도 땀이 흠뻑 난다. 그렇게 좋은 것 같다.
등산을 하러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속에 젖어 아기자기한 이야기거리가 생긴다. 생수가 500원이고 등산때 먹고 마실 것을 사다 보면 세상 물정도 알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 전에는 호텔에서 손님을 만나 커피 한잔에 만원 가까이 하고 식사비도 1인당 10만원씩 해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더욱이 카드로 결제를 하고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더욱 무감각해지는 것이었다.
특히 기사를 데리고 다니면 더욱 그렇다. 물건을 살 일도 거의 없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등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 직접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이 많아졌다.
토요일에 다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인파가 많지 않아 좋았다. 그런데 벌써 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부지런한 사람들도 보였다. 구름이 많아 비가 내릴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6월의 날씨라 그런지 땀을 많이 흘렸다. 깔딱고개에 올라가는 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별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가니 힘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참고 올라갔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문수사를 들렀다. 주지 스님은 출타하고 안계시다고 했다. 내가 잘 아는 혜정스님인데 계시면 차나 한잔 할까 했는데 안계시다고 하니 그냥 등산을 계속했다. 절에서 바라다보이는 앞 경치가 너무 좋았다. 대남문으로 해서 비봉까지 갔다가 승가사 쪽으로 내려왔다. 중간 중간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자연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바위가 산 꼭대기 위에 불안정하게 올라가 있을 수 있는지?
나는 바위를 흔들어보았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바위에 비하면 나는 아주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나는 바위를 흔들어 본다. 그건 내 의지다. 내 희망이다. 바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이차적인 문제다.
바위는 참으로 묵직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단순하다. 아무런 꾸밈도 없다. 그저 바위일 뿐이다. 아무도 상대하지 않겠다는 단호함도 엿보인다. 홀로 고고함을 유지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바위는 그래서 본받을 점이 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곧곧하다.
대남문에서 비봉까지 가는 코스도 단조로지 않고 아주 좋았다. 오래 전에 한번 그 코스를 가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가보니 더 좋은 것 같았다. 승가사 밑에 약수터가 있었다. 물은 떨어졌고 날씨는 덥고 갈 길은 먼 상태에서 약수터를 만나니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역시 산행에는 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산 밑에 내려오니 음식점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룹으로 술을 마시면서 '위하여'를 외치기도 했다. 조용한 산에서 명상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5시간 가까이 있다가 속세로 내려오니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세속을 떠나 있으면 있을수록 나중에는 도저히 세상에 적응을 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상의 일조차 마음에 들지 않게 되니 말이다. 거대한 바위를 흔들어보는 마음과 뭍사람들의 떠듦에 기분이 상하는 마음은 너무 차이가 있어 보였다. 지나친 무거움과 지나친 가벼움의 대칭이었다.
산행을 하면서 울창한 숲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다에서도 어떤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을 보면서 산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는 가고 있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2] (0) | 2005.06.20 |
---|---|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1] (0) | 2005.06.20 |
남녀차별개선위원회 (0) | 2005.06.14 |
사랑은 폭포 속에 있었다 (0) | 2005.06.12 |
현대판 욥기 (0) | 2005.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