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욥기
정말 짙은 초록빛이다. 밝은 햋빛에 눈이 부셨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서울구치소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장미꽃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저 장미를 보았을 것이다. 신세를 한탄하며 인생을 후회하면서 곁을 지났을 것이다. 세월은 얼마나 무심한가? 숱한 삶의 고뇌와 비통함을 잊어버린듯 흘러가고 있으니.
어느 기업의 사장을 만났다. 한 사람을 잘못 만나 기업체를 모두 빼앗기고 징역까지 살고 있는 입장이었다. 나는 그 사람처럼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당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특별한 죄도 없이. 단순한 기업운영상의 관행 가지고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히 배신 당하고 실망하고 손해를 보았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에게 접근해서 이용하고 사기치고 공갈까지 쳤던 사람들, 도와 준다고 달라들었다가 끝내는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고 떠났던 사람들, 악랄하게 자신을 몰아부쳤던 수사관계자들, 불성실했던 변호사들, 사건해결사들 등등... 자신의 가족 빼고는 모두 나쁜 사람들로 기억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믿는 곳은 오직 한 곳, 하나님이었다. 밤낮 없이 매달리고 있었다. 2개월간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 한끼 식사만 하고 기도를 하니 체중이 9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어지러움증을 느낀다고 한다. 정말 현대판 욥이었다. 욥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하나님의 가혹한 시련을 받게 된다. 정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까지 이르러 그는 부르짖는다.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욥기 30:30)
백화점 매장에서 티셔츠 몇장을 들고 나오다 구속된 연로한 사람을 만났다. 동일한 전과 때문에 구속되어 쉽게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말했다. 구치소 안에 있다 보면 실제로 처벌받을 만한 죄를 짓고 들어와 있는 사람은 20%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굳이 징역을 살지 않아도 될 사건을 가지고 경찰이나 검사들이 죄를 만들고 무겁게 해서 실적이나 올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살인사건의 피고인을 접견하고 밖으로 나왔다. 세상은 내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해가 조금 서쪽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 사람의 사건에 관해 심각한 대화를 하고 나온 나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무서운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엄청난 변화가 느껴졌다.
*** 가을사랑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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