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2]

 

 

 

4. 침묵과 자각

 

3학년이 되자 좀더 착실한 생활을 하여야겠다고 마음 먹고 학교 도서관의 고정좌석을 맡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전히 무질서한 생활의 타성은 쉽게 고칠 수 없는 것이어서 장난삼아 소개받은 S대학교의 K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date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던 K와 결별을 선언하게 된 것은 1학기가 끝나던 무렵 너무나 각박했던 나의 현실에 대한 절실한 자각 때문이었다.

 

방학을 맞아 7월과 8월 두 달은 시험공부와는 관계없는 논문준비에 전념하였다. '이중매매의 체계적 고찰'이라는 제하의 약 120매 정도의 논물을 완성 서울법대의 'FIDES'에 게재 발표하였다.

 

이어 가을이 다가오고 캠퍼스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 학원은 소요에 휩싸였고 또 다시 조기방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45ㅐ월의 준비계획을 구상하여 17회 사시를 향하여 전력투구하기로 하고 공부방을 정리한 것은 12월초의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책만 보기로 하고 일체의 외출을 삼가하였다. 가끔 아령과 역기로 몸을 풀면서 방안에서만 칩거하였다.

 

그러나 공부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단없이 엄습해 오는 고독감, 그리고 시험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와 불안감, 현실적인 경제적 곤란 때문에 겪는 정신적 고통, 이러한 모든 것들이 책을 보고 있는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점차로 몸은 약해지고 머리는 피곤해졌다. 동네 제재소 앞 포장마차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바이트 불과 소주병들은 일생 최고로 마음을 아프게 했고, 자리를 박차고 배회하던 삼양동 골목길의 외등에서 발하던 희미한 불빛은 젊은 가슴에서 용출하는 대상없는 분노와 울분을 흡수할 수가 없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준비기간도 다 지나가고 17회 시험이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커다란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었다. 즉 16회 때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 치른 1차시험에서 비록 불합격하기는 하였으나 과히 나쁘지 않은 성적이어서 방심한 나머지 약 13 -4일 정도 밖에 1차에 할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시가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르던 그 당시에는 황급한 심경에서 2차에 급급했던 것으로 주관식문제집 8권만을 가지고 거의 전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1차 발표가 있던 날 중앙청에서 1 문제 차이로 불합격된 사실을 알고 눈이 내리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모든 것이 장난 같이 허무함을 느꼈고, 어쩐지 불운하여 아무리 해도 시험은 영영 안 될 것 같은 에감이 들었다. 아뭏튼 이때의 1차 불합격은 나 자신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일대사건이었다.

 

 

[이하 연재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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