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4]

 

 

 

 

6. 정리와 종결

 

졸업 후에는 오히려 공부가 안되었다. 시간은 많고 뚜렷한 자극이 없어 빈둥빈둥하다가 7월초 다시 해인사 원당암으로 내려갔다.

 

해인사의 여름은 정말 시원하였다. 시원한 계곡으로 목욕하러 다니고 가야산을 올라가 보고 매일 저녁 예불을 드렸다.

 

수양하는 자세로 몸과 마음을 끼끗이 하려고 애쓰면서 책도 열심히 보았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미숫가루를 마시면서 그 정성에 보은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조용한 산중에서 나의 갈 길을 확고히 하고 어떠한 난관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굳게 살아갈 결의를 공고히 하였다. 비록 시험에 떨이진다 해도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자위를 하면서 다만 성실히 노력할 것을 자신에게 거듭 약속하였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마음에서 산사생활을 마치고 한대교내의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성실했던 편이었다. 많은 논문을 참조해 가며서 동료들과 토의하였고, 차례차례 전 과목을 정리해 나갔다. 이때에 대학원에서 특별히 마련한 특강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부하고 견실하게 실력을 다져 나갔다.

 

12월 중순 다시 혜명도서실로 돌아와 집과 도서실을 잇는 직선코스를 시게추처럼 왕래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도서실의 많은 사람들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고, 집안 식구들의 최대한의 정성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고서도 책을 볼 수 있었다.

 

설동균 씨로부터 받은 수험잡지 약 120여권을 모두 뜯어 정리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하루 하루 충실하려고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부였다고 생각할 정도의 열성을 보였던 시기였다.

 

시험은 국사를 제외하고 대체로 무난히 치루었으나, 2차부담도 있었고 해서 발표일까지는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발표 당일의 격했던 감정은 극적이었다.

 

7. 하고 싶은 말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실로 고독하고 힘든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시험을 의식하며 같은 책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어야 했음은 서글픈 일이었고 쉽게 권태를 느끼는 일이었다.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이 시험을 마치고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된 지금 다시 한번 그때의 상태로 돌아가서 몇가지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기로 한다.

 

(1) 흔히들 고시에 필요한 요소로서 건강, 두뇌, 경제를 든다. 하지만 내가 볼때에는 대체로 이러한 요소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문제는 의지의 강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2) 1차를 경시하지 말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영어점수가 매번 최고 점수에 가깝게 나와 그 때문에 행정고시 1차에 3번이나 합격할 수 있었음에도 다른 과목을 너무나 소홀히 하여 사시 1차에서 3번이나 불합격하였다. 특히 어학이 부족한 노장들은 만전의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며, 적어도 1개월의 기간은 투입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3) 기본서는 한 권을 철저히 이해할 것이며, 논문은 되도록 광범위하게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문제집보다는(물론 예외적을 매우 잘된 문제집은 그 자체로 교과서보다 효과가 크다고 본다) 교과서를 여러 번 보고 문제집은 보충적으로 참조하며 논문은 이를 교과서와 문제집 사이에 삽입하거나 타이틀만 적어 넣은 방법을 권하고 싶다.

 

8. 글은 맺으며

 

체계없이 생각나는 단편들은 적어 보았다. 그 동안의 수럼기간을 돌이켜 보면 주위에서 애쓰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6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헌신적이었던 뒷바라지, 형님 내외분, 누님 및 동생들의 정성과 격려는 계속해서 힘이 되어 주었다.

 

또한 모교인 서울법대의 교수님들과 한양대법대학장이신 김기선 교수님 및 동대학 여러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기타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합격의 영광을 미희에게 돌리고 수험생 제위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이만 졸필을 놓기로 한다.

 

[1977년 12월 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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