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한 상태에서 조용히 사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특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다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아뭏튼 일주일 동안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사실 핸드폰이란 매우 편리한 도구지만 사람을 매이게 한다. 수시로 핸드폰 통화를 하다 보면 생각하던 것이 자꾸 줃단된다.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문제다.
일주일 동안 나는 휴가를 냈다. 그리고 조용한 바닷가에 가 있었다. 새벽이면 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태양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시퍼런 파도는 무서울 정도로 싱싱해 보였다. 파도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성이 나면 모든 걸 삼켜버릴 기세였다. 계속해서 모든 존재를 밀어부치고 있었다. 인정 사정 없는 존재였다. 모든 존재가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파도였다.
새벽이면 갈매기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아무리 피곤해도 갈매기들은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면 눈을 붙이고 있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파도소리에 춤을 추는 것인지, 휴식처를 빼앗겨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잠시도 쉬지 않고 바닷물 위를 오고 간다. 그건 하나의 그림이었다. 자연이 만들고 있는 한 폭의 작품이었다. 나는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였다.
바쁘게 살던 사람은 하던 일이 중단되면 갑자기 공백상태가 된다. 진정한 휴식을 취하려면 사실 그런 공백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휴식을 취하려던 것이 오히려 불안감에 빠지고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일이란 원래 그런 공백을 용납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휴가때 특히 그런 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정도 성공은 했지만 100%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공항 구내서점에서 은희경씨의 소설, '비밀과 거짓말'(문학동네, 2005년 1월)을 샀다. 휴가 기간 내내 나는 그 책을 읽었다.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에서 느꼈던 그녀의 감칠맛 있는 글솜씨를 이번 새 소설에서도 만끽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내 삶에 있어서 비밀은 무엇이고, 거짓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비밀이야 특별한 건 없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야 많이 있다. 그걸 모두 까발려야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한 일들이다. 살면서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도 있다. 떳떳하지 못한 일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비밀일까?
거짓말에 대해서는 아주 복잡하다. 적극적인 거짓말도 많다. 소극적인 거짓말도 많다. 선의의 거짓말도 많다. 별 의미 없는 거짓말도 많다. 사실이 아닌 말이 거짓말이다. 진실에 반하는 말이 거짓말이다. 꼭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아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은희경씨의 소설은 제목 자체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내내 삶의 비밀과 거짓말을 화두로 사색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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